국민개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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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미주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군인양성운동을 확산할 목적으로 편찬한 학술서. 정치서.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3년
  • 김도훈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11년 미주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군인양성운동을 확산할 목적으로 편찬한 학술서. 정치서.

편찬/발간 경위

1911년 2월 신한민보사 주필로 임명된 박용만이 근대 국민국가 수립을 위해 필요한 국민의 의무가 병역임을 설파하고 이를 통해 군인양성운동을 확산할 목적으로 편찬한 것이다.

서지적 사항

『국민개병설』은 간행된 지 30여년 후인 1945년 조선혁명당 미주지부 기관지 『독립』에 4월 11일부터 8월 22일까지 총10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그 이유는 조선혁명당 미주지부가 분파될 당시, 김원봉이 좌파세력을 지지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기관지를 장악하고 있던 곽임대(郭林大) 등이 『국민개병설』을 연재한 것이다. 즉, 1928년 박용만을 암살한 인물이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 출신이라는 사실을 비난하려는 의도였다. 현재 『국민개병설』 원본은 확인할 수 없다.

내용

『국민개병설』은 크게 군인의 정신적 교육, 국민개병의 시행방책, 군사교육의 실행방법 등 3부분으로 되어 있다. 박용만은 군인정신으로 애국심(國魂), 공덕심, 명예심, 자격과 인내 등 4가지를 꼽고 있으며, 국민개병 시행방책으로는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을 통한 국민개병 시행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와 사회교육을 통한 국민개병 시행은 망국상태에서 불가능한 것이기에, 일제 탄압이 못미치는 가정의 군사교육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박용만이 새롭게 제기한 군사교육 실행방법은 해외 한인 중 비교적 자유로운 미주지역 한인들을 대상으로 군사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특히 재미한인의 군사교육 실행방법으로 ‘단체군사교육’을 제창하였으며, 이를 위해 먼저 각 거류지별로 자치제도와 법률 시행을 선행하도록 강조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민개병설』에서 피력한 박용만의 구상은 후일 1912년 말 하와이로 건너가 하와이주정부와 협의하에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를 자치기관으로 재편하고, 그 바탕 위에서 대조선국민군단과 대조선국민군단사관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결과로 나타났다.

참고문헌

  • - 「1910년대 박용만의 군인양성론-『국민개병설』을 중심으로-」(김도훈, 『군사』 42,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1).

  • - 「報告 출판물 처분에 관한 건」(독립기념관 소장 마이크로필름, 19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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