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창설 당시 대회의 명칭은 ‘국수 제1위전’으로 ‘국수’는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을 일컫는 칭호였다. 그보다 실력이 아래인 경우는 ‘도기(道棋)’, ‘면기(面棋)’ 등으로 불렸다. 제11기부터 ‘국수전’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고, 2015~2016년 시즌의 제59기까지 60년간 대한민국 바둑계를 대표하는 기전(棋戰)으로 존재하였다.
다른 기전들이 속속 창설되고 상금 및 대국료에서 국수전을 뛰어넘는 기전들도 많았으나, ‘김국수(김인)’, ‘조국수(조훈현)’, ‘이국수(이창호)’ 등 다른 타이틀을 보유한 경우에도 ‘국수’라고 불리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이었다. ‘서명인(서봉수)’, ‘유왕위(유창혁)’ 등은 그들의 전성기 동안에도 국수로 불리지 못하였다.
제1기부터 제9기까지 연속 9회 동안 조남철이 우승을 하였으나, 일본 단기 유학을 거쳐 돌아온 김인에게 제10기(1966년)를 내주면서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김인은 제15기까지 독주하였고, 잠시 윤기현과 하찬석을 거쳐 1976년 제20기부터는 조훈현의 10년 간 독주가 이어진다. 중국 여성기사인 루이나이웨이〔芮迺偉〕가 우리나라에 체재(滯在)하던 중 2000년에 조훈현을 꺾고 우승을 한 것은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사건이다.
국수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창설한 신문기전으로 다른 기전들이 창설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10년대 중반부터 많은 국내 개인전들이 스폰서의 문제로 폐지될 때 함께 사라졌으나, 현재까지도 가장 오래된 기전이라는 지위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