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북한에서 「초소를 지키는 사람들」, 「또 다시 전선으로」, 「비행기 사냥군조」 등에 출연한 배우. 연극, 영화배우, 영화감독.
생애/활동사항
해방 후 서울에서 태을민, 황영일, 김세영 등과 함께 ‘극단예술좌’를 조직해 「독립군」을 무대에 올렸다가 우익세력으로부터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1948년 8월 월북해 이규환 감독이 연출한 「해연」(1948)에 출연했고, 이후 월북해 조선예술영화 촬영소 소속 영화배우로 활동했다. 이후 북한의 첫 극영화 「내 고향」에 조연으로 출연하였고, 1950년 개봉한 북한의 두 번째 극영화 「용광로」에서 주인공 룡수 역을 맡은 후 전쟁 중에도 「초소를 지키는 사람들」(1950), 「또 다시 전선으로」(1952), 「비행기 사냥군조」(1953)를 비롯해 「정찰병」(1953)의 주인공을 맡았다. 1958년에 연극 「위대한 힘」의 지배인, 1959년 극영화 「두만강」의 주인공 등 연극배우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1960년대 이후 박학은 주로 감독으로 활동했는데, 첫 연출작은 「분계선마을에서」(1961)이다. 이후 「붉은 선동원」(1962), 「한 지대장의 이야기」(1966), 「마을사람들 속에서」(1968), 「금강산처녀」(1969)를 연출하였다. 1970년에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백두산창작단의 연출가가 되어 북한이 불후의 고전 명작이라고 평가하는 「꽃 파는 처녀」(1970)를 연출했다. 이 외에도 백두산창작단에 소속되어 「세상에 부럼 없어라」(1970)와 수령형상화 영화의 첫 작품인 「누리에 붙는 불」(1977) 그리고 「첫 무장대오에서 있은 이야기」(1978), 「미래를 꽃피운 사람들」(1982) 등을 연출하였다. 그는 1982년 11월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박학과 그의 창작활동」(소희조,『조선영화』6, 1996)
- 「그의 재능은 불타는 정열과 사색」(백원명,『조선영화』6,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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