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 ()

영화
인물
해방 이후 대종상 편집상, 조선일보 기술상 등을 수상한 영화인. 편집기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6년 7월 13일
사망 연도
2008년 7월 8일
출생지
평안북도 정주
정의
해방 이후 대종상 편집상, 조선일보 기술상 등을 수상한 영화인. 편집기사.
생애 및 활동사항

1926년 평안북도 정주군 옥천면 월옥동에서 태어난 김희수는 신의주 신영극장에서 1947년까지 영사기사로 활동하다 본격적으로 영화일을 하기 위해 월남하였다. 고향선배인 한형모 감독의 집에서 기거하며 여러 가지 일을 도우고 영화에 대해 배웠다. 그때 편집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곧 한국전쟁이 터져 한형모 감독과 헤어져 입대하였다. 입대 후 국군영화촬영소에서 양주남 감독으로부터 본격적으로 편집을 배워 이후 1950년대 한국영화사의 대표적 편집기사가 되었다.

1953년 휴전된 후에도 공무원 신분으로 국군영화촬영소에서 편집기사로 활동하다 1958년 충무로에 ‘김희수 편집실’을 차려 독립하였고 고향에서부터 친분이 있던 이도원과 함께 40여 년간 작업했다. 김원태 감독의 「돈과 시간을 달라」(1958)로 데뷔하여 「청춘비가」(이규환, 1958), 「장마루촌의 이발사」(최훈, 1959), 「귀로」(이만희, 1967), 「햇빛 쏟아지는 벌판」(정창화, 1960), 「화녀」(김기영, 1971),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이규환, 1987), 「은마는 오지 않는다」(장길수, 1991) 등 한국영화에서 대표적인 감독들의 작품에 참여했다. 특히 정창화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임권택 감독과도 인연을 맺어, 임권택 감독의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에서부터 「짝코」(1980), 「만다라」(1981) 등 1980년대까지의 작품 대부분을 김희수가 맡아 편집했다. 그의 마지막 편집 작품은 「한줌의 시간 속으로」(백일성, 1993)이다. 2008년 노환으로 사망하였고, 아들 김상범, 김재범이 현재 편집실을 맡아 대를 이어가고 있다.

상훈과 추모

4회(1964, 1979, 1980, 1984)의 대종상 편집상과 조선일보 기술상(1971) 그리고 1997년에는 영화의 날 표창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한국영상자료원, 이채, 2004)
집필자
이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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