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평양 중구역 도탄동에서 출생한 오미란은 아버지 오향문(인민배우)의 영향으로 국립연극단 배우양성소를 거쳐 평양예술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였다. 1979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조선4·25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소환되어 1980년 「축포가 오른다」의 주인공으로 영화배우의 길을 시작했다. 이후 오미란은 1980년대 북한의 대표적 여배우가 되었다. 1982년 화가와 결혼하고 오히려 더 정력적으로 배우활동을 지속해 「종군기자의 수기」(1982), 「철길 따라 천만리」(1984), 「그들의 모습에서」(1984), 「포화속의 청춘」(1984), 「새 정권의 탄생」(1986), 「잊을 수 없는 나날에」(1986)에 출연하였다.
1987년 「도라지꽃」의 주인공 ‘송림’역을 맡아 북한에서 대중스타로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 작품으로 제1회 평양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여자 연기자상을 수상하였다. 이외에도 「군안전부장」(1987), 「생의 흔적」(1989), 「곡절 많은 운명」(19891990), 「음악가 정률성」(1991), 「민족과 운명 -최현편」(19992000), 「이어가는 참된 삶」(2002)에 출연하였다. 그 가운데 극영화 「생의 흔적」으로 1990년 9월 개최된 제2차 평양국제영화제에서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북한의 영화연구자 차영희는 오미란을 “관찰력과 사고력, 기억력과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창조적 연기를 한다는 의미로 ‘머리로 연기하는 배우’로 평가하였다. 오미란은 2006년 암으로 사망하여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동생 오금란과 시누이 최영희도 영화배우이다.
1984년 공훈배우 및 노력영웅 칭호, 1987년 인민배우 칭호, 1989년 제1회 평양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연기자상 수상, 1990년 뉴욕남북영화제에서 남북 영화예술인 선정, 1990년 제2회 평양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했다. 남한의 『영화연감』에 해당하는 『조선중앙년감』(1993)에는 당시 오미란을 조선4·25예술영화촬영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우라고 평가했으며, 탈북자들도 북한 스타로서 오미란을 첫 순위로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