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원래 3편의 독립된 영화로 기획·촬영된 작품을 김일성 교시에 의해 1편으로 재구성하여 편집한 작품이다. 따라서 1부는 1946년 3·1운동 기념행사 내용, 2부는 5·1절 기념행사 내용, 3부는 보통강 개수공사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건설」은 북한에서 무성영화 형태로 제작된 최초의 장편 기록영화로 국립영화촬영소 전신인 영화제작소의 작품이다.
북한은 1946년 2월 북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 안에 기록영화와 역사자료 촬영을 위한 영화반을 구성하였다. 당시 영화반의 성원은 5명뿐이었는데, 이것이 해방 후 북한에서 ‘민주주의적 민족영화예술을 만들기 위한’ 최초의 조직이었다. 이후 기술일군과 영화 제작관리 일군들을 육성하여 독자적인 영화제작소로 발전시켰다. 당시 영화제작소는 수동기재촬영기 한 대뿐이었으며, 예산은 10만원이었다. 이곳에서 제작된 「우리의 건설」은 북한 정권이 탄생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제도, 건설, 5·1절 기념행사, 3·1운동 기념 경축대회, 보통강 개수공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 3편으로 기획·촬영된 영상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1편의 기록영화로 묶으면서 지금의 제목 ‘우리의 건설’로 하자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재탄생하였다. 1부 3·1기념행사에서는 시민들이 ‘토지는 밭갈이 하는 농민에게’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과 새 조국 건설을 다짐하는 내용이 있다. 2부 격인 5·1절 기념행사에서는 토지개혁으로 땅을 부여받은 농민들의 기쁨과 환희, 노동계급들이 행진하는 모습 등이 있다. 3부에 해당하는 보통강 개수공사에서는 수도 평양의 홍수 피해를 막고 평양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진행되는 보통강 공사의 착공식의 모습, ‘적기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일성이 등장해 첫 삽을 뜨는 모습 등이 담겨있다.
영화반이 조직되어 4개월 만에 나온 첫 영화로 당시 신문 『정로』를 비롯한 북한의 중앙신문들이 대서특필했으며 첫 영화에 대한 평양시민들의 기대가 커서 상영 횟수를 늘렸다.
첫 장편 기록영화로 사회주의 제도로의 개혁을 추진하던 북한의 초창기 모습을 수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