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이경순(李敬淳)과 함께 빅타축음기회사 레코드부에서 일하다가 조선문화영화협회(朝鮮文化映畵協會)에 입사해 일본인 하세가와[長谷川]로부터 녹음기술을 배웠다. 「창공」(1941, 이규환)을 녹음했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법인 조영(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소속 녹음기사로 「병정님」(1944, 방한준)을 비롯한 여러 군국주의 영화들을 녹음했다.
해방 후 조선영화건설본부에 참여했으며, 미 502부대 녹음실에서 근무했는데, 1947년 미 502부대가 미공보원(USIS)으로 개편되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 미공보원이 진해로 이전하면서 1955년까지 진해에서 미공보원 소속 녹음기사로 일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국방부 군영화과 녹음실에서 책임자로 일했으며, 「운명의 손」(1954, 한형모), 「심청전」(1956, 이규환), 「풍운의 궁전」(1957, 정창화), 「촌색씨」(1958, 박영환), 「유관순」(1959, 윤봉춘) 등을 작업하며 이경순과 함께 이필우(李弼雨)의 뒤를 잇는 2세대 녹음기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