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민군에게 포로가 된 국군 간호장교 7명은 인민군 장교의 인솔로 목적지로 호송되는 도중에 뜻밖에 중공군을 만나게 된다. 성에 굶주린 중공군들이 여포로들을 겁탈하려 들자 인민군 장교는 불현듯 적군과 아군이라는 관계를 넘어서서 간호장교들이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한 겨레라는 생각에 부하 사병들과 함께 중공군과 맞서 싸워 그들을 모조리 해치워 버린다.
피 끓는 마음으로 중공군은 전멸시켰으나 너무나 엄청난 사건을 저질러버린 장교는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 포로를 호송하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총살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포로들을 풀어주고 홀로 피신할 수도 없다.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가늠할 수 없는 가운데 그는 남한으로 가면 같은 핏줄인 한 겨레 한 가족의 따스한 삶이 펼쳐질 것 같은 자신이 생기자 부하 사병들을 설득해 간호장교들을 데리고 국군에 귀순한다.
북한 인민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이만희 감독이 반공법 제4조 1항에 걸려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이에 유현목(兪賢穆) 감독이 이만희 감독의 무죄를 주장하는 글(「은막의 자유」)을 발표했다가 역시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되기도 하는 등 용공(容共) 시비로 크게 물의를 일으킨 작품이다.
관대한 처분을 바라는 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의 진정과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이만희 감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지만, 이 영화는 많은 부분을 다시 촬영하고 말썽이 된 장면과 대사가 삭제되는 등 재차 검열을 받았다. 또한 제목도 ‘여포로’라는 말이 국군을 주격으로 보지 않고 북한군 쪽을 중심으로 붙여졌다고 하여 「돌아온 여군」으로 바뀌어 우여곡절 끝에 상영되었다. 현재 이 영화의 필름은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