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폰 (megaphone)

연극
단체
1932년 5월 28일 서울에서 창립된 프롤레타리아 연극 극단.
정의
1932년 5월 28일 서울에서 창립된 프롤레타리아 연극 극단.
설립목적

재래의 연극단체와 대립함과 동시에 근로대중의 이익을 위하여 연극행동을 실행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31년 5월 서울에서 임화, 안막, 김남천, 이규설 등의 주도로 창립된 청복극장은 결국 공연을 올리지 못 한 채 1932년 5월 메가폰의 창립과 함께 자동 해산되었다.비슷한 시기인 1931년 11월 서울에서 김유영, 추적양, 석일량 등의 주도로 창립된 이동식 소형극장은 1932년 2월 함흥에서 한 차례 이동공연을 한 후 청복극장처럼 메가폰에 그 이름을 넘겨주었다. 극단 메가폰의 구성은 서기국에 김형용, 추적양, 각본부에 송영, 유진오, 김형용, 연출부에 신고송, 추적양, 장치부에 추적양, 이상춘, 연기부에 나웅, 무대감독에 김승일 등이 구성원이었다. 메가폰은 1932년 5월 28일 창립하여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조선극장에서 유진오 작 「박첨지」, 김형용 작 「지옥」, 송영 작 「호신술」, 신고송 작 「메가폰 슈프레히콜」, 박영호 작 「깨어진 장한몽」, 오토 뮐러 작 「하차」 등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마지막 10일의 공연은 중단되고 평양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2회의 공연 준비와 인천 순회공연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32년 8월 극단 신건설의 창립과 함께 그 짧은 역사를 마감한다.

의의와 평가

1930년대 들어 활발해진 프롤레타리아 극단 창립의 분위기에서 프로연극 관계자 대부분이 결합된 극단으로 실제 공연에 성공하였으며, 1934년 6월 ‘신건설사 사건’으로 1935년 6월 해산되었다. 우리나라 프롤레타리아 연극의 종지부를 찍게 되는 극단 신건설의 모태이며, 특히 창작극 위주의 공연과 독일로부터 일본을 거쳐 도입된 일종의 ‘시합창낭독극’이라 할 수 있는 ‘슈프레히콜’을 최초로 상연하였다는 점에서 연극사적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사』(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사 편찬위원회, 집문당, 2009)
『한국현대문학대사전』(권영민,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한국연극사』(서연호, 연극과 인간, 2003)
『우리연극 100년』(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집필자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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