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고종 31) 황해도 연백(延白) 출생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1917년 미국으로 유학해 라이더대학(Rider University)을 졸업하고 대한인국민회에 참여해 활동했으며, 흥사단, 청년혈성단 등에 가입했다.
1932년 국내로 돌아와 『국사강의록』을 간행하고 조선물산장려회에 참여했으며, 조선어학회에서 『조선어사전』 편찬 재정위원으로 활동했다.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1941년 무죄 석방될 때까지 3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이듬해 9월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별재정위원을 역임했으며,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고향인 연백군 지역구 한국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75년 숙환으로 사망했으며, 상훈으로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