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아미타불좌상의 높이 50.4㎝, 무릎 폭 33.5㎝, 지장보살좌상의 높이 51.3㎝, 무릎 폭 31㎝, 관음보살반가상의 높이 43.5㎝, 최대 폭 16㎝. 아미타불좌상은 나무로, 지장보살좌상은 흙으로, 보살반가상은 불석(佛石)으로 각각 조성되었다. 아미타불좌상의 양 손은 따로 제작하여 끼워 넣은 상태이다.
안양암 대웅전 삼존불상 중 지장보살좌상을 제외하고는 조성 배경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전언에 의하면, 아미타불좌상은 강원도 고승 건봉사(乾鳳寺)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또한 「안양암지(安養庵誌)」에 의하면, 지장보살좌상은 1889년(고종 26) 경성(慶惺)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양암 대웅전 삼존불상은 아미타불좌상, 지장보살좌상, 관음보살반가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삼존불상은 각각 나무, 흙, 경주 불석으로 만들었는데, 원래 함께 발원된 것이 아니라 따로 만들어 모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정으로 불상과 보살상들이 함께 봉안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아미타불좌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편으로, 통견(通肩)식으로 법의를 착용하고 가부좌를 취하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살짝 올린 상태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역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끝이 뾰족하고 큼직큼직한 나발(螺髮), 원통형 정상 계주(髻珠), 반원형 중앙 계주가 표현된 두발(頭髮) 부분이 얼굴 보다 커서 마치 가발을 덮어 쓰고 있는 듯하다. 인자한 느낌의 눈과 오뚝한 코, 살짝 다문 입, 큰 귀로 이루어진 상호(相好)에서는 불상으로서 갖추어야 할 종교미가 나타난다. 법의는 신체의 굴곡과 유기적이지 못하여 경직된 느낌이 든다.
지장보살좌상은 머리와 신체가 장방형으로서, 전체적으로 길어 보인다. 통견식으로 법의를 착용하고 가부좌를 하였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 손등을 정면을 향하게 하였으며,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았는데, 손바닥 위에는 보주로 보이는 지물(持物)이 있다. 민머리를 한 보살상은 얼굴 표정 등에서 마치 승려를 실제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것 같은 착각에 들게 한다. 보살상은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소조 기법으로 제작되었지만, 얼굴 표정이나 법의의 주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관음보살반가상은 경주에서 생산되는 불석(佛石)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돌이 불상 제작에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8세기 이후이다. 원통형의 높은 보관을 쓰고 통견식으로 법의를 착용하였다. 가슴에는 승각기(僧脚崎)의 매듭이 표현되었으며, 왼쪽 무릎 앞에서 흘러내린 법의 자락은 U자를 그리고 있다. 장방형의 얼굴에 이목구비는 큼직큼직하며, 그 표정은 아미타불좌상과 비슷하다. 대좌 오른쪽에는 연꽃을 든 동자상이 있으며, 왼쪽에는 금강역사상이 조각되어 있다.
아미타불좌상과 관음보살반가상은 얼굴 표정이 비슷하여 같은 시기인 18세기 이후에, 소조지장보살좌상은 19세기 말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타불좌상은 전체적인 비례, 조형적인 특징, 무릎 앞과 옆으로 흘러내린 법의 자락의 표현에서 17세기 후반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색난(色難)이 조성한 불상들과 유사하다. 관음보살반가상은 동자와 금강역사상을 권속으로 거느리고 있는 조선 후기의 관음보살상의 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지장보살좌상은 복잡하지만 섬세하지 않고 모호하게 표현하던 19세기 존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
안양암 대웅전 삼존불상은 원래 함께 발원한 것은 아니지만, 18세기 이후에 나무와 흙, 불석 등 다양한 재질을 사용하여 불상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지장보살좌상은 「안양암지」에 기록된 1889년의 조성 연대와 양식적인 특징이 일치하여 조선 말기 불교조각사 연구의 중요한 기준작이 된다. 보살반가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관음보살반가상은 연꽃을 든 동자와 금강역사가 권속(眷屬)으로 함께 출현하는 조선 후기의 도상적인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과 18세기 이후에 중요한 불상 재료로 사용된 경주 불석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