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중앙 불상의 높이 34.5㎝, 무릎 폭 23.7㎝, 좌측 불상의 높이 35㎝, 무릎 폭 22.2㎝, 우측 불상의 높이 35.7㎝, 무릎 폭 24㎝. 불상과 대좌는 따로 만들어 조합하였다. 전언에 의하면, 석조여래좌상 3구는 강원도 철원군 심원사(深源寺)에서 옮겨온 것으로, 원래 천불상의 일부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상 중에서 향 좌측 불상의 대좌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1902년에 개금하였다고 한다.
청룡사 석조삼존불상은 모두 통견(通肩)식으로 법의를 착용하여 연화좌 위에 가부좌를 취하고 있다. 불상들은 법의 주름의 표현과 수인(手印) 등에서 약간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비례와 조형적인 특징, 대의(大衣)와 승각기(僧脚崎)를 갖춰 입은 착의법 등이 비슷하다. 앞으로 약간 숙인 머리는 불신(佛身)에 비해 큰 편이며, 큼직한 나발(螺髮)에 둥근 정상 계주(髻珠)와 반원형의 중앙 계주를 갖추고 있다. 얼굴은 길이에 비해 폭이 상당히 넓은 편이며, 살짝 뜬 가늘고 긴 눈, 오뚝한 코, 작은 입, 큰 귀를 가지고 있다.
삼존불상 중 중앙의 불상은 두 손을 옷소매 속에 넣은 채 배 앞에 모으고 있다. 가부좌한 다리 중앙에서 흘러내리는 법의 자락은 좌우 대칭을 이룬다. 법의와 불신과의 관계는 그다지 유기적이지 않고 딱딱한 느낌이다.
대좌는 상대석 · 중대석 · 하대석을 갖추었는데, 상대석과 하대석은 팔각형 중대석의 높이가 낮아 거의 맞닿아 있는 듯하다. 상대석은 앙련(仰蓮), 하대석은 복련(伏蓮)으로 표현되었는데, 상대석보다 하대석의 연꽃이 길게 표현되었다.
좌우측의 불상은 다리 중앙으로 흘러내린 법의 자락의 표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 수인과 대좌는 같은 형식이다. 즉 두 손을 양 무릎 위에 손등을 위로 한 채 가지런히 올려놓은 수인과 중대석이 생략된 채 상대석과 하대석이 맞붙어 있는 대좌 형식이 그것이다. 상대석과 하대석은 중앙의 불상과 같이 상대석보다 하대석의 복련(伏蓮)이 길다.
청룡사 석조삼존불상은 향 좌측 불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해, 대한제국 광무(光武) 6년인 1902년에 당시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금어(金魚: 조각승) 한봉창엽(漢峰瑲曄)이 개금하였다고 한다.
청룡사 석조삼존불상은 불석(佛石)으로 조성되었는데, 획일적으로 자른 돌의 크기에 맞춰 불상을 표현하였기 때문에 비례와 조형적인 면에서 다소 경직된 느낌이 든다. 즉 머리와 상체, 하체의 비례가 일정하고 측면의 모습도 비슷하다. 또한 삼존불상은 원래 천불상(千佛像)의 일부분이어서 몇 가지의 표현 형식에 맞춰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상호(相好)의 표정과 통견식 착의법이 같고 좌우측 불상은 수인마저 같다.
청룡사 석조삼존불상은 원래부터 청룡사에 봉안되었던 것도 아니고, 천불상의 일부분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18세기 이후에 불상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던 불석으로 조성되었다는 점, 향 좌측 불상 대좌에서 1902년에 개금했던 사실, 개금에 참여했던 조각승 한봉창엽이 기록되어 있어서 조선 말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