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룡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석조여래좌상(3구)이다. 2005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언에 의하면, 강원도 철원군 심원사(深源寺)에서 옮겨온 것으로, 원래 천불상의 일부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통견(通肩)식으로 대의(大衣)와 승각기(僧脚崎)를 갖춰 입은 착의법 등이 비슷하다. 좌측 불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따르면, 대한제국 광무(光武) 6년인 1902년에 당시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조각승 금어(金魚) 한봉창엽(漢峰瑲曄)이 개금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룡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석조여래좌상(3구).
개설
내용
삼존불상 중 중앙의 불상은 두 손을 옷소매 속에 넣은 채 배 앞에 모으고 있다. 가부좌한 다리 중앙에서 흘러내리는 법의 자락은 좌우 대칭을 이룬다. 법의와 불신과의 관계는 그다지 유기적이지 않고 딱딱한 느낌이다.
대좌는 상대석 · 중대석 · 하대석을 갖추었는데, 상대석과 하대석은 팔각형 중대석의 높이가 낮아 거의 맞닿아 있는 듯하다. 상대석은 앙련(仰蓮), 하대석은 복련(伏蓮)으로 표현되었는데, 상대석보다 하대석의 연꽃이 길게 표현되었다.
좌우측의 불상은 다리 중앙으로 흘러내린 법의 자락의 표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 수인과 대좌는 같은 형식이다. 즉 두 손을 양 무릎 위에 손등을 위로 한 채 가지런히 올려놓은 수인과 중대석이 생략된 채 상대석과 하대석이 맞붙어 있는 대좌 형식이 그것이다. 상대석과 하대석은 중앙의 불상과 같이 상대석보다 하대석의 복련(伏蓮)이 길다.
청룡사 석조삼존불상은 향 좌측 불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해, 대한제국 광무(光武) 6년인 1902년에 당시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금어(金魚: 조각승) 한봉창엽(漢峰瑲曄)이 개금하였다고 한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사찰문화재』서울특별시(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조계종출판사, 2012)
-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송은석, 사회평론, 2012)
- 『17세기 조각승과 불상 연구』(최선일, 한국연구원, 2009)
- 『조선후기 불교장인 인명사전』(안귀숙·최선일, 양사재, 2009)
- 『조선후기 승장 인명사전』(최선일, 양사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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