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석가불은 높이 88.5㎝, 미륵보살은 높이 84.5㎝, 제화갈라보살은 높이 82.5㎝.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은 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미륵보살상과 제화갈라보살상이 협시하는 모습으로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상의 왼손과 제화갈라보살상 · 미륵보살상의 양손은 따로 제작하여 끼워 넣은 상태이다.
석가모니불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천축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상은 석가모니불과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이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높이 88.5㎝의 중형으로, 상체가 약간 긴 듯하나 전체적인 비례가 적절하며, 대의 안쪽에 편삼을 착용하고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한 채 가부좌를 취하고 있다. 약간 앞으로 숙인 머리에는 끝이 뾰족한 나발(螺髮)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 원통형의 정상 계주(髻珠), 반원형의 중앙 계주를 갖춘 두발(頭髮) 부분과 눈꼬리가 양옆으로 살짝 올라간 반쯤 뜬 눈, 곧게 뻗어 내린 코, 살짝 다문 입, 적당한 크기의 귀 등의 상호(相好)를 갖추고 있다. 장방형의 길쭉한 상체는 적절한 비례를 갖춘 하체로 떠받치고 있어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법의로 대의(大衣)와 승각기(僧脚崎) 등을 걸쳤는데, 옷주름이 부분적으로 형식화되었지만 신체의 윤곽을 따라 유기적으로 처리되었다.
좌우의 제화갈라보살좌상과 미륵보살좌상은 얼굴 표정과 비례 등 전체적인 분위기가 석가여래좌상과 같다. 두 보살상은 높은 화관(花冠)을 쓰고 있으며, 대의 안쪽에 편삼을 착용하고 가부좌를 취하고 있다. 제화갈라보살좌상은 왼손을 어깨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배 옆에 두었다. 미륵보살좌상은 수인과 조형적인 특징이 제화갈라보살좌상과 같지만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내린 모습이다.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상의 조성 배경을 알려줄 발원문은 남아 있지 않으나, 17세기 전반에 조성되었다는 단서를 제공해 주는 중수발원문이 있다. 이 발원문에 의하면, 석가모니불좌상은 “만력(萬曆) 연간”인 1573~1619년에 조성되었으며 1713년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노적사(露積寺)에서 조각승 진열(進悅), 영희(靈熙), 태원(太元), 처림(處林), 청휘(淸徽) 등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발원문에서는 1730년에 경기도 삼각산(三角山) 서암사(西岩寺)의 석가모니불, 제화갈라(提花竭羅)보살, 미륵보살을 봉안하였는데, 화원(畵員)은 각총(覺聰), 칠혜(七惠), 두책(斗策), 태원(太元)이라고 한다.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은 전체적인 비례와 얼굴 표정 등에서 17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조각승 현진(玄眞)이나 그의 제자들에 의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안진호(安震湖)가 1943년에 편찬한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천축사(天竺寺)」조에 “제5장 상설(像設)1 소상(塑像)에 석가, 문수, 보현 3존, 본질금상(本質金像), 높이 2.85, 너비 1.5, 흥천사(興天寺)에서 이래(移來)하였다”는 기록이 있어서 삼존불상은 원래 노적사에서 흥천사로, 다시 천축사로 옮겨 온 것으로 추측된다.
불상 안에 있던 대부분의 복장물은 거의 도난된 상태이며, 석가모니불좌상에서 2장의 발원문과 17세기경에 간행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근년에 인쇄된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과 『원각경보안보살장(圓覺經普眼菩薩章)』, 연대를 알 수 없는 주서다라니(朱書陀羅尼)가 발견되었다.
또 다른 발원문에서는 1730년에 경기도 삼각산(三角山) 서암사(西岩寺)의 석가모니불, 제화갈라(提花竭羅)보살, 미륵보살을 봉안하였는데, 화원(畵員)은 각총(覺聰), 칠혜(七惠), 두책(斗策), 태원(太元)이라고 한다. 이 발원문이 천축사 목조석가모니삼존불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은 머리를 앞으로 살짝 숙여 내밀고 있으며, 상체가 길다. 머리가 신체에 비해 큰 편인 중․후반의 불상과 차이를 보이는 17세기 전기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오른쪽 어깨를 덮고 완만하게 늘어져 있는 법의 자락과 하반신을 덮고 있는 대의 자락의 표현 방식이 특징이다.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은 석가모니불좌상에서 발견된 중수발원문과 『봉은본말사지』를 통하여 원래 노적사에서 조성되어 흥천사로, 다시 천축사로 옮겨 온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삼존불상은 1713년에 조각승 진열과 영희에 의해 중수되었지만, 양식적으로는 17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현진 계통의 조각승들이 만든 불상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불상에서 발견된 2장의 중수 발원문은 18세기 전반의 조각승 계보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