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백양사 석조 아미타삼존불 좌상 ( )

조각
유물
문화재
울산광역시 중구 백양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정의
울산광역시 중구 백양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개설

2013년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본존상의 높이 69㎝, 좌협시상 높이 66.5㎝, 우협시상 높이 63㎝.울산광역시 중구 함월산(含月山)에 자리한 백양사의 석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원래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으나, 새로 대웅전을 중창하면서 본존상은 응진전의 본존으로 봉안하고, 양 협시상은 새로운 본존불과 함께 대웅전의 향좌측 불단에 모셔져 있다. 석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불석제로 조성되었는데, 불석은 17세기 중엽 경부터 불상 재료에 적극적으로 도입된 재료이다.

제작 시기

불상의 밑면에는 모두 복장공이 마련되어 있다. 복장에 납입된 대부분의 유물은 사라진 상태이지만, 두 협시보살상에서 개금할 때 납입한 개금발원문이 발견되어 이 불상의 하한 연대 및 중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다. 중수 발원문은 1767년 삼존불상을 중수하면서 기록한 발원문인데, 화연(華演)의 화주로 만징(萬澄)과 성옥(性玉) 등이 중수화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를 통해 이 삼존불상의 조성연대도 1767년 중수 이전으로 시기가 올라간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전반적인 불상 양식으로 볼 때 1700년을 전 · 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수화원으로 참여한 만징은 1705년에 충옥(忠玉)을 도와 경상남도 의령 백련암 목조보살좌상을 제작한 바 있고, 1755년에는 수화사 임한(任閑)을 도와 청도 운문사 비로전 삼신불회도와 삼장보살도를 제작하였다. 성옥은 1754년의 선운사 천불도과 1770년 송광사 화엄전 화엄경변상도 제작에 보조화원으로 참여하였다.

내용

본존 아미타여래좌상은 길상좌로 결가부좌를 하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여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모습이다. 상반신은 빈약한 편이나 무릎은 높고 넓어 비교적 안정감을 준다. 나발로 표현된 팽이모양의 머리에는 반달모양의 중앙계주와 구슬모양의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방형의 큰 얼굴은 살이 올라 양감이 있으며, 부푼 눈두덩 사이로 그윽하게 반개한 눈을 표현하였고, 살며시 다문 입술에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큼직한 주먹코, 둔중하게 표현된 귀, 짧은 인중 등에서 작자의 개성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어 내린 변형식 편단우견으로, 상반신에 표현된 주름은 좌우 협시보살상에 비해 활달하게 표현된 편이며, 무릎 아래로는 가지런히 연꽃잎을 펼치듯 주름을 잡았으나 도식적인 느낌이 강하다. 수인은 석가여래의 수인처럼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촉지인을 결하였고, 왼손을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맞댄 설법인을 짓고 있다.

좌우 협시보살상은 본존에 비해 규모가 약간 작고 어깨 폭이 좁지만 상체에 비해 하체의 너비 및 높이가 당당하여 큰 차이를 주지 않는다. 얼굴은 본존상과 거의 같지만 꽃잎모양의 높고 큼직한 보관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좌협시보살은 보관 상단 중앙에 아미타여래의 화불(化佛)을, 우협시 보살은 보관 상단 중앙에 정병(淨甁)을 표현하여 각각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도상적 특징을 나타냈다. 보관의 아래로는 보발을 가지런히 표현하였고, 어깨 위로는 흘러내린 두 가닥의 머리카락을 땋아 어깨를 따라 3가닥으로 짧게 드리웠다. 상호는 작자의 개성을 발휘하여 본존상과 같이 큼직한 주먹코에 둔중한 귀, 강하게 도드라진 인중선, 짧고 살이 풍부한 턱 선으로 표현되었다.

천의(天衣)는 불의(佛衣)처럼 상의(上衣) 위에 대의(大衣)를 변형식 편단우견으로 입은 이중착의법이며, 본존불에 비해 주름이 간결하고 보다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가슴 아래로는 비스듬히 한번 접은 군의를 표현하였고, 복부는 볼록하게 처리하여 신체의 굴곡을 드러냈다. 좌우 협시보살의 수인은 서로 대응하게끔 반대로 조성되었는데, 관음보살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바닥을 위로 향하여 엄지와 검지를 맞대었고, 우협시 대세지보살은 왼손을 아래로 내리고 오른손 바닥을 위로 향하여 엄지와 검지를 맞대었다.

의의와 평가

울산 백양사 아미타삼존불상은 17세기 중 · 후반부터 경상도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한 재료인 불석으로 제작한 불상이다. 이 불상의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좌우협시 보살상에서 발견된 중수 발원문을 통해 만징과 성옥이 1767년에 중수하였다는 중수 기록을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 화기집』(송천스님·이종수·허상호·김정민 편저, 성보문화재연구원, 2011)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손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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