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불상 높이는 석가여래 106.5㎝, 아난존자 114㎝, 가섭존자 119㎝, 나한상 63~68㎝. 다보사 목조석가삼존상과 소조십육나한상 내부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나주 덕룡산 쌍계사에 봉안하기 위해 1625년에 4월부터 7월까지 조각승 수연(守衍)과 성옥(性玉) 등이 제작하였다. 이 불상이 언제 나주 쌍계사에서 다보사로 이운(移運)되었는지 알 수 있는 문헌은 남아있지 없다.
다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높이가 106.5㎝인 중대형 불상이다. 본존은 머리에 소라 모양의 나발(螺髮)이 촘촘하고,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肉髻)가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표현되었으며, 머리 중앙에 반원의 중앙계주(中央髻珠)를 장식하였다. 방형의 얼굴에 가늘게 뜬 눈, 삼각형의 뾰족한 코,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작은 입, 길게 늘어진 귀를 표현하였다. 대의 자락은 오른쪽 어깨를 약간 덮은 후, 팔꿈치를 지나 왼쪽 어깨로 비스듬히 넘어가고, 하반신을 덮은 옷자락의 주름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보다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가슴을 가린 승각기(僧脚崎)는 상단을 수평으로 처리하고 대각선으로 접었다. 불상의 뒷면은 목 주위에 대의를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옷자락이 나뭇잎 모양으로 늘어져 있다.
좌우의 가섭 · 아난존자상은 입상이다. 가섭존자는 이마의 주름과 수염을 표현하여 노비구(老比丘)로, 아난존자는 젊은 얼굴로 표현되었다. 본존과 용모가 비슷한 점에서 역시 수연이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두 상 모두 가슴 높이로 합장하였으며, 의복의 채색이 다를 뿐 장삼과 가사의 표현이 동일하다.
16나한상은 불상 왼쪽에 홀수 번호의 나한상을, 오른쪽에 짝수 번호의 나한상을 벽면을 따라 배치하였다. 소조로 제작된 나한상(羅漢像)은 높이가 63~68㎝의 중형으로,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나한상과 같이 얼굴이나 자세가 자연스럽다. 나한상은 바위 위에 결가부좌하거나 한쪽 무릎을 세운 채로 앉아 있고, 양손을 합장하거나 지물을 들고 있는 등 형태가 다양하다. 나한상은 모두 민머리 형태로, 흰 눈썹은 길게 늘어지고 이마에 잔주름이 잡힌 노스님과 눈썹과 수염이 듬성듬성한 젊은 수행자 모습의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나한상은 장삼 위에 걸친 붉은 색의 가사를 끈으로 묶어 가슴부터 하반신까지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있다.
석가삼존상과 나한상에서 각각 발견된 백지묵서(白紙墨書)의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1625년 4월부터 7월까지 조각승 수연(守衍), 성옥(性玉), 계화(戒和), 천기(天琦), 의엄(儀嚴), 응인(應仁), 법림(法林), 설주(雪珠)이 제작하였다.
수화승으로 참여한 수연은 17세기 전반에 전국을 무대로 활동한 조각승으로, 영철(靈哲)과 운혜(雲惠, 雲慧)로 이어지는 조각승 계보를 형성하였다. 수연이 수화승으로 만든 불상은 충남 서천 봉서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1619년), 인천 강화 전등사 목조삼불좌상(1623년), 전남 나주 쌍계사 목조지장삼존상과 소조나한상(1625년), 전북 익산 숭림사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1624년),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1636년), 전북 남원 풍국사 목조삼세불좌상(예산 수덕사 봉안, 1639년)이다. 수연이 만든 불상들은 얼굴형이나 이목구비(耳目口鼻)에서 풍기는 인상, 신체 비율, 착의법 등이 거의 유사하다.
다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과 나한상들은 제작 시기, 조성 사찰, 조성자 등을 명확히 알 수 있고, 조각승 수연이 만든 영산전 불상이라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기준작이 되는 작품이다. 특히 소조나한상은 조선 전기의 나한상의 요소를 반영하고 있어 자연스러운 자세와 착의법 등에서 조선시대 나한상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