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석가상은 높이 76㎝, 무릎 폭 57.5㎝, 보살상은 높이 75㎝, 무릎 폭 49㎝. 삼존불 가운데 본존인 목조여래좌상과 향좌측 목조보살좌상은 조선 후기 작품이지만, 향우측의 보살상은 최근에 제작된 작품이다.
여래좌상과 보살좌상 내부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은 백지묵서(白紙墨書)로, 이에 따르면 1712년 전북 변산(邊山) 개암산(開岩山) 도솔암(兜率菴)에 봉안하기 위하여 조각승 초오(楚悟)와 신옥(信玉)이 이 석가여래삼존상을 제작한 것이다. 이 불상들이 언제 부안 도솔암에서 익산 혜봉원으로 이운되었는지 알 수 있는 문헌은 남아있지 않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높이가 76㎝인 중형 불상으로, 상체를 곧게 세우고 얼굴을 앞으로 약간 내밀고 있다. 머리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와 뾰족한 나발(螺髮)이 표현되어 있고, 머리 중앙에 반원형의 중간계주(中間髻珠)와 정수리에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있다. 타원형의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은 눈꼬리가 길고, 일자형의 코는 콧날이 곧게 뻗었으며, 입은 살짝 미소를 띤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지만, 개금이 두꺼워 잘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大衣)자락은 목에서 가슴까지 U자형으로 늘어져 있고, 그 옆으로 한 가닥의 옷주름이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걸치지 않았지만, 배 부분에 반대쪽 대의자락과 접힌 부분을 표현하였다. 하반신에 늘어진 대의자락은 배에서 좌우로 몇 가닥 펼쳐졌다. 불상 뒷면에는 목둘레에 대의 끝단을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 무릎 위에는 짧게 소매 자락이 늘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僧脚崎)는 상단이 연판형으로 접혀 있다. 무릎 위에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취하고 있다.
목조보살좌상은 높이가 75㎝로 중형으로, 높고 커다란 보관(寶冠)에 연화문과 화염문 등이 장식되었다. 목조보살좌상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보살상의 신체 비율과 착의법을 하고 있는데, 각진 방형의 얼굴에 눈은 가늘게 뜨고, 코는 높고 가늘며, 입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 보살상의 이목구비(耳目口鼻)의 표현은 석가불과 차이가 많이 난다. 보살상은 본존에 비해 어깨가 당당하고, 오른쪽에 걸친 대의자락이나 하반신의 처리 등이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색난이 만든 불상과 양식적으로 유사성이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치켜들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무릎 위에 올렸다.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목조보살좌상은 신체 비율이나 인상 및 착의법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 불상들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찰에 봉안되었던 불상이 현재 사찰로 이운(移運)된 후에 삼존불로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보면, 여래상이 보살상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발원문에 언급된 수화승 초오(楚俉)는 1700년에 수화승 경호와 전라남도 곡성 도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제작하였고, 수화승으로는 부안 도솔암 목조여래좌상(익산 혜봉원 봉안)을 제작하였다.
혜봉원 목조불상은 제작 시기, 조성 사찰, 조성자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기준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래상과 보살상이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대의 처리 들이 달라 제작시기와 작가가 다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