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운사 팔상도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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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서울 개운사 팔상도
서울 개운사 팔상도
회화
유물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성북구 개운사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팔상도.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개운사 팔상도(開運寺 八相圖)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기타
지정기관
서울특별시
종목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유산(2006년 07월 06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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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개운사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팔상도.
개설

2006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83.3㎝, 가로 273.5㎝. 개운사 대웅전의 정면 향좌측벽에 봉안되어 있다. 4폭의 비단을 이어 만들었으며, 보관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변색으로 인하여 화면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1883년에 대허 체운(大虛 軆訓), 금곡 영환(金谷 永煥), 한봉 창엽(漢峰 蒼曄)이 조성한 팔상도로서, 2단으로 나눈 화면의 상단 향우측에서부터 향좌측으로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하단 향우측에서부터 향좌측으로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을 배치한 화면분할식 구도이다.

내용

팔상의 향좌측에는 각각 방제를 두어 제목을 표기하였는데, 보통 화면분할식 팔상도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팔상이 전개되는데 비하여, 이 불화는 이야기의 전개 순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표현되었으며, 각각의 장면들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고목, 건축물, 바위 등의 경물을 이용하는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였다. 또한 8폭으로 구성되는 팔상도에서 묘사되던 장면들이 다수 생략되었다. 채색은 금색이 많이 사용되어 매우 화려한 느낌이다. 팔상 각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 상단에는 커다란 원광 속에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護明菩薩)이 여러 천신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아래의 입태전(入胎殿)에는 마야부인과 시녀가 앉아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향우측 상단에는 석가가 전생의 소구담(小瞿曇) 시절에 도적으로 몰려 말뚝에 묶인 채 활을 맞는 장면, 아래로는 아난과 가섭을 협시로 하여 가부좌한 부처의 모습, 마야부인과 흰 연꽃을 든 인물이 대화하는 모습이 표현했다. 이는 마야부인이 정반왕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해몽을 부탁받은 바라문이 마야부인께서 성인을 잉태했음을 알려주는 장면으로 추정된다.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가 탄생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상단의 향우측은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자가 태어나는 장면으로, 마야부인이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붙잡고 아이를 낳고 있으며 시녀들이 출산을 돕고 있다. 그 옆으로는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태자를 씻기는 장면, 태자가 사방 일곱 걸음을 걷고 왼손으로 하늘,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외치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하단에는 아시타 선인이 태자의 관상을 보고 장차 성장하여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거나 아니면 출가하여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실상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한 그림이다. 각 장면들은 고목과 건물 등을 경계로 구분하여 표현되었다. 화면의 상단 향우측에는 동문으로 나간 태자가 노인을 보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늙고 추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며, 그 아래는 남문으로 나간 태자가 병자를 보고 육신의 고통에 대해 깨닫는 장면, 하단 향우측에는 고목을 경계로 하여 서문으로 나간 태자가 상여를 보고 삶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해 깨닫는 장면, 상단 향좌측에는 북문으로 나간 태자가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태자가 마침내 궁궐을 떠나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화면 상단에는 태자가 천신들의 호위를 받으며 출가하는 장면, 아래에는 마부 차익(車匿)이 태자의 관복을 가지고 돌아와 울고 있는 마야부인에게 바치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아래로는 태자의 출가를 막기 위해 곁에서 회유하던 시녀들과 부인이 잠든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빈 의자만이 태자가 떠났음을 알려 주고 있다. 반대편에는 정반왕(淨飯王)과 대면하고 있는 석가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출가를 결심했음을 알리는 장면으로 추정된다.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출가해 설산으로 들어가 수행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상단에는 강에 들어가 몸을 씻고 수자타의 우유죽을 받아먹는 모습, 하단에는 태자가 출가 후 화려한 옷을 벗어 놓고 스스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자 제석천(帝釋天)이 가사를 받치는 장면, 머리를 깎고 풀 방석에 앉아 수행하고 있는 태자의 모습, 태자에게 공양하기 위해 공양물을 나르는 모습 등이 그려졌고 하단에는 돌아갈 것을 청하러 말을 끌고 온 신하 등이 표현되었다.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석가가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金剛寶座) 위에 결가부좌하고 선정에 들자 석가의 성도에 위협을 느낀 마왕(魔王) 파순이 여러 가지 비술로 방해하는 모습과 석가모니가 마군들을 항복시키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화면의 향우측에는 마군의 방해를 물리치고 정각을 이룬 부처님이 선정한 손을 풀어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지신(地神)에게 증명토록 하는 모습과 항복한 마군들이 엎드려 빌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아래에는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하기 위해 마왕이 열희(悅妃) · 희심(喜心) · 다미(多媚)의 세 미녀를 보내 노래와 춤으로 유혹하였으나 부처님이 명상에서 깨어나 한번 웃으니 세 미녀가 갑자기 추한 노파로 변해버린 장면, 미녀의 유혹에 실패한 마왕이 1억 8천의 마군을 이끌고 가서 폭력으로 부처님을 항복시키려는 장면, 석가와 마군이 병 움직이기 내기를 하는 모습 등이 표현되었다.

  7.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석가가 정각을 이룬 후 녹야원(鹿野苑)에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모습을 그렸다. 상단에는 교진여(橋陳如)를 비롯한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하는 장면, 하단은 가운데의 탑을 중심으로 향좌측은 두 단에 걸쳐 연화좌에 가부좌한 여섯 여래와 사천왕 2구가 표현되었다. 가운데의 탑은 흙장난을 하며 놀던 아이들이 부처님께 흙을 쌀로 생각하여 공양하자 부처님께서 이를 탑으로 바꾸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서 석가가 생애를 마치고 열반에 든 모습을 그렸다. 하단의 아래서부터 석가의 두 발이 황금색의 관 밖으로 나온 장면, 그 위로는 관을 태우는 장면, 옆으로는 관을 태운 후 사리(舍利)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여러 개의 화염문과 관 밑으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위에는 항아리에 가득 담긴 사리를 둘러싸고 바라문이 사리를 여덟 등분하는 장면을 표현한 듯, 한 비구가 항아리의 사리를 상자에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방형의 화면을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석가팔상의 장면을 한 폭에 표현한 팔상도이다. 경국사 팔상도(1887년), 지장사 팔상도(1893년), 보광사 팔상도(1898년), 한국불교미술박물관 소장 팔상도(19세기후반)처럼 19세기 후반 서울 · 경기 지역에서 유행했던 화면분할식 구도를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불화』(김정희, 돌베개, 2009)
『서울의 사찰불화』Ⅱ(서울역사박물관, 2008)
『서울의 사찰불화』Ⅰ(서울역사박물관, 2007)
『세존이 도를 이룬 그림 석가팔상도』(동국대학교 박물관, 2007)
『서울전통사찰불화』(서울특별시, 1996)
「조선후기 팔상도의 특징」(박수연, 『불교미술사학』4, 통도사성보박물관·불교미술사학회, 2006)
「조선시대 팔상도 도상의 연원과 전개」(이영종, 『미술사학연구』215, 한국미술사학회, l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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