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237㎝, 가로 224.4㎝. 경판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판전에 봉안된 불화로, 화기에 “판전중단봉안(板殿中壇奉安)”으로 명기되어 있어 중단에 봉안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초의선사 의순(草衣禪師 意恂)이 증명으로 참여하였으며 주상전하와 왕비전하, 대왕대비와 왕대비 등 왕실 어른들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발원 문구가 화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발원 문구가 쓰인 이유는 판전의 건립이 왕실 후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어(金魚)로 선율(善律), 유진(有進), 법인(法仁), 진조(進浩)가 참여하였고 돈석(頓錫), 법유(法宥), 혜오(惠悟), □규(□奎), □일(□一), 석눌(錫訥)이 출초하였다. 화기에 조성 연대가 박락되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주자인 박용석(朴龍石)이 1857년 「봉은사개금탱화시주목록(奉恩寺改金幀畵施主目錄)」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불량답매입기(佛糧畓買入記)」에 1857년(철종 8) 영기대사(永奇大師) 등이 권화(勸化)하기 위해 판전에 신중탱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어, 이 불화는 1856년 판전이 건립된 이듬해인 1857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에 신중들을 4단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하였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신중도 형식과 다르다. 첫 번째 단 중앙에 흰 소를 타고 있는 대자재천(大自在天)과 세 번째 단에 예적금강(穢跡金剛)이 주요 존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최상단의 제석, 범천을 중심으로 상단에는 천녀를 두고 하단에는 사천왕, 아수라, 건달바 등의 호법신을 배치하였다. 소를 탄 대자재천과 예적금강이 주존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1868년 용문사 신중도가 있으나 화면의 구성과 인물의 표현 등은 상당히 다르다.
전체 39명의 인물들을 질서정연하게 4단으로 배치한 점은 화면에 통일성을 주나 인물 표현 등이 경직된 느낌을 준다. 채색은 적색을 주조로 하면서 녹색과 청색을 사용하고 있으며, 천인들의 얼굴은 호분을 사용하여 평면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무장상들은 육색으로 칠하고 눈과 코, 입 주위에 음영을 넣어 처리하여 대비를 주었다.
봉은사 판전 신중도의 도상적 특징은 대자재천과 예적금강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 중 예적금강은 원래 수륙의식문의 외호신중으로 등장했던 명왕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 의식집이 정비되면서 신중단이 성립하게 됨에 따라 신중도의 구성원으로 등장하게 된다. 예적금강이 등장하는 도상은 경상도와 경기도 일대에 집중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판전의 향좌측 벽에 봉안되어 있으며, 불화의 상단에는 4개의 복장주머니가 달려 있다. 하단의 위치한 화기는 앞부분이 박락되어 정확한 조성 연대를 확인하기 어렵다. 화기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화면 하단에 변색이 많이 이루어졌다. 특히 대자재천을 중심으로 한 무장상들의 얼굴과 의복 등에는 촛농으로 추정되는 하얀 이물질이 붙어 있으며 채색의 박락이 심하여 대자재천의 탈 것의 형상을 판별하기 어렵다.
화기에 “판전중단봉안(板殿中壇奉安)”이라 하여 판전의 중단에 봉안되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중단 개념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 16~18세기의 중단 불화는 주로 지장도나 삼장도를 봉안하였으나 18세기 중반 이후 불교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신중도를 봉안하고 주로 일상 의식인 예불이 행해지게 된다. 이 불화는 당시 변화된 불교의식을 반영하여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도상적인 면에서도 의식과의 관련성이 보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