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19세기 영산회상도.
개설
증명은 연응 기현(沿應 淇泫), 설봉 태문(雪峰 泰文)이 하였고, 해옹 자선(海翁 慈船)과 청신녀 김원상행(淸信女 金圓相行), 상궁 김청정화(金淸淨花), 이대각화(李大覺花) 등이 돌아가신 은사 춘담 세은(春潭 世恩)과 남편 김재룡(金在龍), 상궁 유최□화(劉最□花) 등의 영가천도를 위해 시주하였다. 덕월 응륜(德月 應崙)이 금어로서 불화 제작을 지휘하였으며 상규(尙奎), 선명(善明), 완근(玩根) 등이 편수로 참여하였다.
내용
나지막한 수미대좌 위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불은 어깨가 넓고 장대하여 적당한 볼륨과 안정감 있는 비례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가운데로 들어 올려 손가락을 마주잡고 있으며 왼손은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맞잡고 길상좌를 취한 오른쪽 발목 위에 대었다. 석가모니여래가 이처럼 항마촉지인이 아닌 아미타구품인의 수인을 결하고 있는 예는 조선 후기 불상과 불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석가모니여래의 수인을 아미타구품인으로 그린 불화는 화장사 아미타후불도(1870년), 서울 미타사 대웅전 아미타후불도(1873년)의 초본을 그대로 이용하여 제작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편 사천왕의 자세는 매우 불안정해 보이는데, 이는 화장사 아미타후불도와 미타사 아미타후불도처럼 평상에 걸터앉은 자세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여래가 앉은 연화좌에서도 나타난다. 여래가 앉아 있는 불탁과 사천왕이 앉은 평상은 용도가 뒤섞여 여래의 연화좌가 평상에 가려지고 다리 부분은 불탁과 결합되어 있다.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 신광희, 「서울 奉恩寺 板殿의 佛畵 연구」, 『동악미술사학』, 2020
- 김정희, 「서울 奉恩寺 佛畵考」, 『강좌미술사』, 2007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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