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은사 십육나한도 (서울 )

서울 봉은사 십육나한도(1)
서울 봉은사 십육나한도(1)
회화
유물
문화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19세기 십육나한도.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19세기 십육나한도.
개설

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면 바탕에 채색. 세로 100.7~101.3㎝, 가로 193~198㎝. 1895년 영산전 건립과 함께 조성되어 봉안된 불화이다. 4폭씩 한 세트를 이루는 십육나한도는 각 폭에 16명의 나한존자가 각각 독립적인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나한의 형상은 심산계곡을 배경으로 시자와 시동을 거느리고 앉아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나한도는 영산전의 후불도의 좌우에 각각 2세트씩 나뉘어 봉안되어 있다. 각 폭의 나한에게는 주지묵서(朱地墨書)로 방제가 있어 존명을 확인할 수 있는데, 4명의 나한에게는 방제가 없다. 방제가 없는 나한은 제10, 11, 13, 15존자로서 원래의 나한도가 결실됨에 따라 1955년에 만봉(萬峰)과 석성(碩成)이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내용

봉은사 십육나한도는 상규(尙奎), 경선 응석(慶船 應釋), 종선(宗禪), 창민(昌玟), 성전(性㻇), 경협(景冾), 재겸(在謙), 금곡 영환(金谷 永煥), 영명 천기(永明 天機), 한봉 창화(漢峯 瑲燁), 덕월 응륜(德月 應崙), 허곡 긍순(虛谷 亘巡), 금하 기형(錦荷 機炯), 금성 성전(錦城 性詮), 범화 윤익(梵華 潤益), 선명(善明) 등 많은 화승들이 참여하여 1895년에 제작되었다. 나한들은 모두 깊은 산속을 배경으로 가사 위에 장삼을 걸치거나 풀어헤친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시동을 거느리거나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제1존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선정에 든 모습이고 제2존자는 염주를 돌리며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 제4존자는 웃옷을 풀어헤친 채 나무에 편안히 기대어 경전을 읽고 있으며, 제8존자는 재주를 뽐내는 시동을 보며 파안대소하는 모습이다. 제12존자는 무릎 사이에 지팡이를 끼고 시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으며, 제14존자는 보탑을 공양하고 있는 천자를 만나고 있다.

나한의 모습은 젊은 사미승의 형상을 하거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젊은 사미승의 모습을 표현할 때는 얼굴에 음영을 거의 두지 않는 반면 노인형 나한의 얼굴에는 주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비교적 강하게 음영을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 산속의 바위나 돗자리, 짚방석 등에 앉아 있지만, 제5존자와 제6, 제16존자처럼 병풍과 장막 등을 치고 있어 마치 실내에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특징

봉은사 십육나한도는 주변에 인물, 소품, 경물들을 다양하게 배치하고 금을 사용하여 화려한 느낌을 준다. 한편 배경이 되는 산수는 청록산수로 조선 말기 민화의 배경을 떠올리게 한다. 산 위에 분리대처럼 일렬로 세워진 나무는 19세기 서울 · 경기 지역의 감로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나한도의 화승들이 감로도의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어 동일한 모티프를 사용한 듯하다. 이 불화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은 19세기 서울 · 경기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화승들로서 본 작품은 서울 · 경기 지역 불화의 지역적 화풍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현황

봉은사 십육나한도는 각각의 존상에 방제가 있어 존명을 알 수 있다. 영산전의 후불도를 바라보고 왼쪽 벽면부터 오른쪽 벽면으로 나한도의 존명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폭에는 제16주다반탁가존자(注茶半託迦尊者), 제1빈도라발라타도존자(賓度羅跋蘿惰闍尊者), 제12나가서나존자(那伽犀那尊者), 제14벌나파사존자(伐那婆斯尊者)가 표현되어 있다. 두 번째 폭의 처음 존자는 제9수박가존자(戍博迦尊者)이나 나머지 3명의 존자는 방제가 없어 존명을 알 수 없다. 세 번째 방제가 없는 한 명의 나한과 제3가낙가발라타도존자(迦諾迦跋曪惰闍尊者), 제5낙거라존자(諾距羅尊者), 제7가리가존자(迦理迦尊者)가 묘사되어 있다. 네 번째 폭은 제2가낙가벌차존자(迦諾迦伐蹉尊者), 제4소빈타존자(蘇頻陀尊者), 제6발타라존자(跋陀羅尊者), 제8벌도라불다라존자(伐闍羅弗多羅尊者)가 산수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방제가 있는 나한은 모두 1895년에 제작된 것이지만 방제가 없는 일부는 소실되어 1955년에 새롭게 조성된 것이다. 또한 원래 16나한도는 향우측에 홀수 존자, 향좌측에 짝수 존자를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봉은사 십육나한도는 배열이 교란되어 있다. 이는 불화를 새로 조성하여 표구하는 과정에서 뒤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후대에 조성된 4폭의 나한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창엽, 응석, 윤익 등은 1892년 불암사 십육나한도를 제작하였는데 그 도상을 조금 수정하여 그린 불화가 봉은사 십육나한도이다. 19세기 말 서울 · 경기 지역 불화를 주도했던 화승들이 참여하여 조성된 이 불화는 당시 유행한 나한도의 보편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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