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면 바탕에 채색. 세로 154.2㎝, 가로 208㎝. 연화사 신중도는 1901년에 괘불, 천수천안관음탱, 현왕탱, 칠성탱, 산신탱 등과 함께 조성된 후 대웅전에 봉안되었다. 불화의 증명은 완허 보□(玩虛 普□), 월해 화□(越海 和□), 대은 돈희(大恩 頓喜), 연응 정현(沿應 正現)이 참여하였고 불화의 조성에는 한봉 응작(漢峰 應作)을 위시하여 덕월 응륜(德月 應崙), 대은 돈희, 계은 봉법(啓恩 奉法), 보산 복주(寶山 福珠), 보암 긍법(普庵 亘法), 금운 정기(錦雲 正基), 한곡 돈법(漢谷 頓法), 한명 한□(漢溟 漢□), 청암 운조(淸庵 雲照), 재겸(在謙), 두삼(斗三), 창오(昌旿) 등 12명의 화승들이 동참하였다.
화면 상단에 제석천과 범천이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고 하단의 중앙에 동진보살(위태천)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 모든 장방형의 광배를 등지고 있어 중심 구도가 역삼각형으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양 측면에 무장신과 일월천신 등을 빈 공간 없이 배치하고 제석천과 범천의 사이에 악기를 연주하는 천동 · 천녀를 중앙에 모아 표현함으로써 화면 전체의 안정감을 준다.
연화사 신중도의 모본은 남양주 흥국사 신중도(1883년)이다. 이 불화의 제작에 참여한 봉법(奉法), 긍법(亘法), 돈법(頓法), 두삼(斗三), 창오(昌旿) 등이 남양주 흥국사를 중심으로 크게 활약했던 화승들인 점을 고려하면 남양주 흥국사 신중도와 이 불화와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다.
짙은 적색을 주조색으로 하면서 각 존상의 두광 등을 하엽(荷葉) 계열의 짙은 녹색을 사용한 점, 천공을 짙은 청색으로 처리한 점은 19세기 불화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채색법이다. 조선 말기의 불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금박(金箔)을 활용하여 신장상의 무기와 제석천 · 범천의 의복 등에 활용하고 있는 점, 의복 주름 처리에 바림법을 사용한 점은 19세기 중엽 이후의 서울 · 경기 지역의 화풍이다. 화면 상단의 채색이 약간 어둡게 변색되었지만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남양주 흥국사 신중도와 서울 봉은사 신중도는 서울 · 경기 지역에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유행했던 신중도를 대표하는 2가지 유형의 불화이다. 연화사 신중도는 두 대표 유형 중 남양주 흥국사 화승들의 활동 반경과 이들에 의한 불화 초본의 유통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