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총림선원 시왕도 ( )

지옥의 아홉째 왕 도시대왕
지옥의 아홉째 왕 도시대왕
회화
유물
문화재
경상남도 진주시 총림선원에 소장된 17세기 말의 시왕도(十王圖).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총림선원에 소장된 17세기 말의 시왕도(十王圖).
개설

201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52.4㎝, 가로 124㎝. 진주 총림선원 소장. 총림선원 시왕도는 불교에서 지옥을 다스리는 10명의 왕 중 9번째 왕인 도시대왕을 그린 것으로, 승려 화가 철현이 17세기 말 경에 제작하였다. 이 작품과 함께 조성된 시왕도는 총 4폭이 확인되었는데,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 제1진광대왕도(秦廣大王圖)」와 「제2초강대왕도(初江大王圖)」를, 서울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서 「제5염라대왕도(閻羅大王圖)」를, 인천 송암미술관에서 「제6변성대왕도(變成大王圖)」를 소장하고 있다. 이들 시왕도는 형식화되어 전승되는 조선 후기 시왕도 중 현존하는 가장 이른 사례로 조선 전기 시왕도와 조선 후기 시왕도의 연결점이 되는 작품이다.

내용

불교에서 지옥의 10명의 심판자 중 아홉 번째 왕인 도시대왕(都市大王)을 그린 「제9도시대왕도」로 17세기 승려화가[畵僧] 철현(哲玄)이 단독으로 조성하였다. 시왕도는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지장보살도와 함께 봉안하는 불교 회화이다. 시왕도는 열 명의 왕을 각 한 폭에 나누어 그리기도 하고, 둘 혹은 세 명의 왕을 한 폭에 함께 그리기도 하는데, 철현이 제작한 시왕도는 한 폭에 한 명의 왕을 그린 시왕도이다.

철현은 1678년 「불영사 불패(佛牌)」를 제작하였는데, 불패 뒷면에 먹으로 적은 기록에 따르면 철현은 포항 오어사(吾魚寺)의 승려로 통도사의 영현(靈現), 탁진(卓眞) 스님과 불영사에 유랑을 왔다가 인연이 닿아 불패를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681년 철현은 수화승(首畵僧)을 맡아 「감로왕도(甘露王圖)」를 조성하였다. 이 감로왕도는 불영사 혹은 인근 사찰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우학문화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다. 철현의 정확한 생몰 연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1681년 수화승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볼 때 17세기 중후반에 출생하여 17세기 말에 이러서는 왕성한 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총림선원 소장 시왕도는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철현의 활동 시기와 화풍을 통해 볼 때 17세기 말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이 시왕도는 한 폭에 한 명의 왕을 그린 시왕도로 화면 상단에는 시왕이 주재하는 재판장의 장면을 하단에는 지옥 장면을 그렸다. 화면 상단 중앙에 두 손을 합장한 도시대왕이 몸을 오른쪽으로 비틀어 의자에 앉았다. 도시대왕의 오른쪽 위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지장보살이 등장한다. 도시대왕 좌우에는 시왕을 보필하는 판관(判官)과 녹사(綠事), 사자(使者)와 나찰(羅刹) 등을 배치하였는데, 인물들의 자세가 자유롭다. 화면 하단에는 흑마(黑馬)를 타고 망자(亡者)의 집에서 망자의 죄를 기록한 두루마리를 가져오는 사자와 업칭(業秤)으로 망자의 죄의 무게를 측정하는 무리가 배치되고, 차가운 얼음 속에 망자를 집어넣는 한빙지옥(寒氷地獄)을 묘사하였다. 화면 구성은 조선 전기의 시왕도는 상단의 인물 배치가 정적이고, 하단의 지옥장면의 비중이 작았던 반면, 철현이 제작한 시왕도는 상단 인물의 배치와 자세가 자연스러워지고 하단의 지옥장면의 비중이 확대되었다. 이는 이후 18세기 시왕도의 일반적인 구성방식과 유사하다.

세필(細筆)로 인물의 윤곽선을 그리고, 시왕 및 주요 권속의 볼을 붉게 덧칠하여 홍조를 띄우고, 천녀와 천동은 이마와 코, 턱에 흰색을 덧칠하여 소위 삼백법을 시연하였다. 의복은 여러 가지 문양으로 가득 채우고, 병풍과 탁자에는 화려한 넝쿨 문양과 기하학적 문양을 크게 배치하였다. 이러한 화풍은 1699년 「동화사 아미타불회도」 등 17세기 불화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처럼 철현작 시왕도는 화면 구성면에서는 18세기 시왕도의 선행 작례를 보여주며, 화풍상으로는 17세기 불화의 전통 및 유행양식을 보이고 있다.

현황

시왕의 관복을 비롯한 일부 권속의 복식에 개채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보다 면밀한 조사를 통해 개채의 범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의의와 평가

철현의 시왕도는 조선 전기 시왕도의 기본 화면 구성방식을 이어받아 18세기로 이어지는 체계화되고 정형화된 조선 후기 시왕도의 표본을 선구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더욱이 현재 남아있는 예가 드문 17세기 시왕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 철현의 시왕도에 등장하는 권속들의 도상은 1744년작 「옥천사 시왕도」를 시작으로 1892년작 「청곡사 시왕도」에 이르기까지 답습과 변용을 거듭하여 전승되었다.

참고문헌

「17세기 화승 철현작 시왕도 연구」(김윤희, 『불교미술사학』15, 불교미술사학회, 2013)
「조선시대 18세기 시왕도 연구」(김혜원, 『동악미술사학』13, 동악미술사학회, 2012)
「일본 사국지역 조선조 전기 불화 조사 연구」(정우택, 『동악미술사학』9, 동악미술사학회, 2008)
「우학문화재단 소장 감로탱화: 도상의 의미와 화면구성을 중심으로」(김승희, 『단호문화연구』5, 용인대학교전통문화연구소, 2000)
「조선시대 15~6세기 불교회화의 특색: 지장시왕도를 중심으로」(박은경, 『석당논총』2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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