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왕도는 조선시대 현왕재의 회주 현왕과 그 권속을 그린 불화이다. 조선 시대 조성되기 시작한 불화의 한 장르로 사찰의 중심전각의 영단에 봉안되었다. 현왕은 염라대왕의 미래불인 보현왕여래를 지칭한다. 이 불화는 망자 사후 3일째 되는 날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현왕재를 표현하였다. 화면의 구성은 시왕도와 흡사하다. 중앙에 현왕이 의자에 앉고 좌우에 대륜성왕·전륜성왕 등이, 상단에는 동자 등이 배치된다. 이 불화의 가장 이른 예는 1718년 제작한 기림사 현왕도이다. 현왕도는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조선 특유의 불화이다.
조선시대 불교 의식집에 근거하여 조성되기 시작한 불화의 한 장르로, 화면의 구성은 같은 시기 시왕도(十王圖)</a>와 흡사하다. 인간 사후 3일이 되는 날 사자(死者)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설행하는 현왕재를 위해 조성되었으며, 사찰의 중심 전각의 영단(靈壇)에 봉안되었다.
현왕도의 주존(主尊) 현왕은 중국 당나라 말기 찬술된 불교경전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에서 내세에 성불할 것을 수기받은 염라대왕(閻羅大王)의 미래불(未來佛)인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를 지칭한다. 조선시대에 보현왕여래가 개설하는 여러 의식들을 모아 편찬한 의식집의 현왕재 항목에서 예배대상으로 모셔지고, 이를 표현한 불화를 현왕탱(現王幀)이라 기록함에 따라 보현왕여래는 현왕이라 지칭되었다. 현왕은 1574년 석왕사에서 판각한 불교의식집 『권공제반문(權供諸般文)』에 ‘성왕(聖王)’으로 처음 나타나며, 1691년 용흥사에서 판각한 『제반문』에서 ‘현왕(現王)’으로 등장한 이후 ‘성왕’과 ‘현왕’이 혼용되어 사용되다가 19세기 말 20세기 초 ‘현왕’으로 통일되었다.
현왕도의 일반적인 화면구성은 중앙에 현왕이 의자에 앉고, 좌우에 대륜성왕(大輪聖王)과 전륜성왕(轉輪聖王), 판관(判官), 녹사(錄事), 사자(使者)가, 상단에는 천인(天人)과 동자(童子)가 현왕을 감싸듯이 배치되는 형식이다. 이 구성은 하단 지옥장면을 삭제한 조선시대 시왕도와 흡사하다. 또한 현왕은 원래 염라대왕의 미래불인 보현왕여래로 부처이지만 불화로 표현될 때에는 시왕도에 등장하는 염라대왕과 동일하게 원유관(遠遊冠)과 관복(官服)을 착용한 제왕형(帝王形)으로 표현된다. 이는 현왕재가 염라대왕의 미래불인 보현왕여래 자체보다는 명부 시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설행된 예가 없는 현왕재는 조선시대 시왕 십재의 형식에 사후 3일이라는 단위와 시왕 중 염라대왕과 관련이 있는 보현왕여래를 삽입하여 탄생한 새로운 불교 천도재이다. 이를 반영하여 현왕도는 시왕도와 동일한 구성을 차용하여 표현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왕도는 1718년 제작한 기림사 현왕도가 가장 이른 예이며 18세기 제작한 작품이 11점이 현존한다. 이후 일제강점기 이전까지의 작품이 총 80여 점이 알려져 있다. 이 중 18세기 초반에 제작한 현왕도는 정면상의 현왕과 좌우대칭의 권속을 표현하여 정적인 구도를 보이는데 반해 18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현왕도는 현왕이 측면상을 취하고 동적인 구도를 취하면서 더욱 시왕도와 흡사해졌다.
현왕도는 시대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조선시대 불교의 위치를 반영한 조선 특유의 불화이자, 당시 조선인들이 받아들인 명부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 불화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