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열

  • 예술·체육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비암사 괘불화, 신원사 괘불화, 수덕사 괘불화 등을 그린 승려. 화승.
인물/전통 인물
  • 본관미상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은경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비암사 괘불화, 신원사 괘불화, 수덕사 괘불화 등을 그린 승려. 화승.

개설

화승 응열의 생몰년은 알 수 없으나 그가 1650년부터 1673년까지 충청남도 공주, 연기, 예산 등지에서 기념비적인 대규모 괘불화를 조성하였다. 1650년 갑사 괘불화 화기에 법명이 처음 등장하며 이후 비암사, 신원사, 수덕사 등의 괘불화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외에도 많은 불화 제작에 관여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활동사항

응열은 1650년에 충청남도 공주 갑사 괘불화 제작에 수화승 경잠(敬岑)의 보조화승, 1657년에 충청남도 연기 비암사 괘불화 제작에 수화승 신겸(信謙)의 보조화승으로 각각 참여하였다. 이후 수화승으로 두각을 나타낸 작품은 1664년 신원사 괘불화와 1673년 수덕사 괘불화이다. 묵서 화기에 의하면 신원사 괘불화와 수덕사 괘불화 제작에 수화승 응열 외에도 학전(學全)과 석능(釋能)이 동시에 참여하였다. 즉 응열은 충청권역 내에서 활동한 화승으로 경잠과 신겸 아래 보조화승으로 참여하다가 이후 신원사와 수덕사의 괘불화 제작에서 수화승으로 활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응열이 수화승이 되어 주도한 불화는 삼신도상 가운데 설법인의 대관보살형(戴冠菩薩形) 노사나불도상이다. 이 도상을 그린 불화 가운데 신원사 괘불화가 선두격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어 수덕사 괘불화가 제작되었다. 두 불화 모두 17세기 후반에 충청권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대관보살형 도상이 이 지역에 편재된 현상과도 관련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 두 불화에 묘사된 오색 찬연한 광염 물결 표현은 바로 노사나불 진신의 신변 연출의 시각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괘불화 가운데 현실 속세의 영산 도량에 노사나불의 현현(顯現)과 이에 응하는 시방세계 불보살들의 표현에서 그의 기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 - 『불화, 찬란한 불교 미술의 세계』(김정희, 돌베개, 2009)

  • - 「응열」(박은경, 『한국역대서화가사전』상,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 「공주 신원사 괘불탱」(박은경, 『미술사연구』19, 미술사연구회, 200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