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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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도
진주성도
회화
유물
국가유산
진주성(晋州城) 내외의 경관을 10폭의 병풍에 재현한 19세기 회화식 지도.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진주성도(晋州城圖)
분류
유물/일반회화
지정기관
부산광역시
종목
부산광역시 시도유형문화유산(2013년 10월 23일 지정)
소재지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 (부민동2가,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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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진주성(晋州城) 내외의 경관을 10폭의 병풍에 재현한 19세기 회화식 지도.
개설

2013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종이 바탕에 담채. 세로 134㎝, 가로 430.0㎝.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진주성 내외의 지리적 형세와 풍광을 10폭의 연폭 병풍에 담은 회화식 지도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는 읍성의 구조와 성 안팎의 공공 시설물, 지형지세를 회화기법으로 상세히 묘사하였다.

내용

충절의 고장으로 알려진 진주는 조선시대 왜적의 방비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서 임진왜란 때는 2차례 큰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1603년(선조 36) 경상우병영이 창원에서 진주로 이전되었고, 경상우병마절도사가 일정 기간 동안 진주목사를 겸임하였다. 이후 군사 업무와 일반 업무를 구분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진주목사가 따로 파견되어 성 밖 북쪽에 위치하는 관아에서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군사와 일반 행정업무의 주체가 서로 달랐던 상황은 「진주성도(晋州城圖)」의 화면에서도 확인된다.

진주성은 1591년(선조 24)에 성의 동쪽 구역이 확장되었고, 1605년(선조 38)에 성곽을 증축하면서 내성과 외성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진주성도」10폭 중 제4~9폭에 석축으로 구분된 내, 외성의 경관이 포치되었다. 중요 시설물에는 명칭이 부기되어 있는데, 군사시설이나 공공시설이 내성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특히 병마절도사의 집무공간인 운주헌(運籌軒)을 비롯해 진남루(鎭南樓), 중영(中營), 촉석루(矗石樓), 창렬사(彰烈祠) 등이 비중 있게 묘사되었다. 남강변(南江邊) 촉석루 아래에 논개(論介)가 적장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든 장소로 전하는 의암(義巖)이 확인된다. 또 남강과 연결되는 해자(垓字)로 북쪽 외성 너머에 조성한 대사지(大寺池)에는 백련(白蓮)이 가득 피어 있어 한여름의 경관임을 알 수 있다.

북쪽 성 밖에는 진주목사가 거처하며 공무를 집행하던 관아(官衙)와 진영(鎭營), 객사(客舍), 향교(鄕校) 등이 자리하고 있다. 각각 주된 건물과 담장, 출입문, 부속건물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어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나머지 넓은 공간은 진주 외곽을 감싸는 첩첩의 산악과 도로 등이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남강변에서 낚시하고 빨래하는 백성들과 강을 건너는 나룻배도 그려 넣었다. 한편 촉석루 마당 한쪽에서 1823년(순조 23) 진주목사 홍백순(洪百淳)이 새로 지은 의기사(義妓祠)가 발견되어 그 이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진주성도는 18세기 들어 진경산수화가 유행하면서 등장한 일종의 회화식 군현지도이다. 현재 진주성도는 한양이나 평양의 전경(全景)을 담은 사례들과 함께 많은 양이 전하고 있다. 다만 화면 구성과 세부 표현법이 대동소이하여 정형화된 도상(圖像)이 반복적으로 모사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진주성도」 역시 그 범주에 속하며 형식화된 필치이긴 하나 묘사력이 안정적이어서 경상도 병영 소속 군관화사(軍官畵師)가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 19세기 진주성의 이모저모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시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진양지(晋陽誌)』
『진주성도』(국립진주박물관, 2013)
김준형. "조선후기 진주성도(晉州城圖)의 비교분석." 朝鮮時代史學報 68.- (2014): 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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