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경상북도 금릉군 출생으로,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금릉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52년 전쟁 중 정부에서 20만 석의 양곡을 비상 방출했을 때 각 도 양곡 운영상태 감시를 위한 국회 감시단의 일원으로 경북지역에 파견되었다.
부산정치파동 당시에는 내각제를 주장하며 헌병대에 연행되었으며, 이후 당시 국무총리였던 장택상이 이끄는 신라회(新羅會)에 가담해 정부 주도의 대통령 직선제안과 국회의 내각책임제안을 절충한 발췌개헌안을 마련해 국회에서 통과시키는데 일조했다.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1957년 6얼 실시된 김천시 시장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지만, 1959년 12월 6일 김천시장직을 사임했다.
1985년 3월 14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자택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