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9월 2일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현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출생으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33년 보성전문학교 법학과에 입학해 1936년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부에 입학, 1940년 졸업했다.
해방 후 미 군정청 관재처(管財處) 감찰관을 역임했으며, 1948년 5월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양주군 갑구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같은 해 6월 무소속구락부에 가담했다. 1948년 6월 상임위원회 중 산업노농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1949년 2월 수산입법을 위한 위원회에 참여했다. 1949년 9월 신정회(新正會)에서 활동하며 그해 10월 개정된 국회법에 따른 상임위원회 개선으로 산업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49년 12월 신정회, 일민구락부(一民俱樂部), 대한노농당(大韓勞農黨), 무소속 4파 합동으로 1950년 1월 결성된 대한국민당(大韓國民黨)에 신정회 소속으로 참여했으며, 1950년 4월 조병옥(趙炳玉)을 후임 국무총리로 추천하는 연서에 서명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