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조선 후기에 『각암집』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1605년 4월 12일 대구부 수성현(壽城縣) 파잠리(巴岑里) 집에서 출생하였다. 서인계 학자로 김장생(金長生)에게 수학하였으며, 동문인 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 등과 교유하였다. 1642년 모친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역병에 걸려서 이듬해 정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일찍 세상을 떠나 오언고시 5수, 오언절구 6수, 오언율시 9수, 칠언절구 23수, 칠언율시 14수가 문집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잡저에 「대학집해(大學集解)」가 있는데, 팔조목을 해설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정의
조선 후기에 『각암집』 등을 저술한 문인.
개설
생애
1605년(선조 38) 4월 12일 대구부 수성현(壽城縣) 파잠리(巴岑里) 집에서 출생하였다. 타고난 자질이 빼어나 8세 때 이미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노성한 사람과 같았다. 그 해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나이가 들면서 여러 고금의 서적을 박람하였는데, 『소학』의 입교(立敎) · 명륜(明倫) · 경신(敬身) 세 가지를 근본의 본체로 삼고, 가언(嘉言) · 선행(善行) 두 가지를 말단의 작용으로 삼아 실천하여 사람들이 몸소 실천하는 군자라고 하였다.
1624년 가을 형 전유익(全有翼)과 함께 한양에 가서 사마시(司馬試) 회시(會試)에 응시하였다. 형이 합격하였으나 객지에서 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형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하여 장례를 치른 뒤, 다시는 과거장에 나아가지 않았다.
1631년 부친의 명으로 동생 전유장(全有章)과 함께 김장생(金長生)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스승이 독서의 차례에 대해 먼저 『소학』과 『주자가례』를 읽고, 그 다음 『심경』과 『근사록』을 읽어 근본을 배양하여 문로(門路)를 열어놓은 뒤에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을 읽으라고 하자, 그 말씀을 받들어 차례차례 독서하였다. 송시열 · 이유태 · 강흡(姜恰) 등과 종유(從遊)하며 학문을 강론하였다.
1642년 모친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몸을 상하여 역병에 걸려서 이듬해 정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대구 각계산(覺界山) 서쪽 기슭 유좌(酉坐) 언덕에 장사지냈다.
활동사항
빼어난 시재(詩才)가 있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나 오언고시 5수, 오언절구 6수, 오언율시 9수, 칠언절구 23수, 칠언율시 14수가 문집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잡저에는 삼강령 · 팔조목 · 총론 세 부분으로 된 「대학집해(大學集解)」가 실려 있는데, 이 가운데 팔조목을 해설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또한 「사부모잠(事父母箴)」 · 「화형제잠(和兄弟箴)」 · 「순부부잠(順夫婦箴)」 · 「교붕우잠(交朋友箴)」 · 「계자질독서과농잠(戒子姪讀書課農箴)」 등 5편의 잠(箴)과 문장과 요지가 정밀하고 긴절하다고 알려진「도학설(道學說)」이 있다.
저서
참고문헌
- 『각암선생문집(覺菴先生文集)』(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 『한국경학가사전』(최석기,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98)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www.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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