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일기 ()

조선시대사
문헌
1882년 박래겸이 평안남도 암행어사 재임 시에 기록한 일지. 견문록.
이칭
이칭
서수록(西繡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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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82년 박래겸이 평안남도 암행어사 재임 시에 기록한 일지. 견문록.
개설

1822년(순조 22) 평안남도 암행어사에 임명된 박래겸이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일기이다. 박래겸은 홍문관 부교리였던 당시 약 4개월 동안 암행어사로 활동하였다. 『서수일기(西繡日記)』는 그가 한양을 출발한 후 평안도의 여러 고을을 순시하며 공적 업무 수행 내용과 그 지역에 대한 소개, 유명지에 대한 관람, 그리고 지역 인사들과의 교류를 내용으로 한다.

편찬/발간 경위

박래겸(朴來鎌, 1780∼1842)은 밀양 박씨이고 자는 공익(公益), 호는 탑서(塔西)·만오(晩悟)이다.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박선호(朴善浩)이며, 증조부는 대사간을 지낸 박춘보(朴春普)이다. 1809년(순조 9) 문과에 급제한 박래겸은 승정원 주서(注書)를 거쳐 1814년(순조 14)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었다. 이때 올린 여러 건의 상소로 순조에게 상당한 신임을 얻었으며, 1822년(순조 22) 홍문관 교리 재임시 평안남도 암행어사에 임명되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1827년(순조 27) 함경도 북평사(北評事)로 10개월간 활동하며 『북막일기(北幕日記)』를 저술하였다. 1829년(순조 29) 7월, 서장관으로 3개월간 연행(燕行)을 한 후 『심사록(瀋槎錄)』을 저술하였다.

박래겸은 암행어사로 공무를 수행하면서 일정과 문서의 수발 상황, 방문 지역의 특성, 관료들의 임무 수행 태도, 주민들의 생활, 역사와 문화현상을 기록하였다. 곧 암행어사 임무 수행을 하는 가운데 기록을 남겨 사환 일기를 작성한 것이다.

서지적 사항

『서수일기』는 1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책에는 저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작성 연대가 ‘임오년’이라고 간지로만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임오년 윤3월이 있는 해는 1822년(순조 22)이며, 『순조실록(純祖實錄)』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통해 보면 이때 평안남도 암행어사에 임명된 사람은 박래겸이었다. 따라서 그가 이 책의 저자임을 알 수 있다.

내용

『서수일기』는 한양을 출발하여 청천강 이남 평안도 일대의 민정(民情)을 탐문하고 각처에서 출도(出道) 한 후 돌아와 복명(復命) 하기까지 일정에 따라 날짜별로 기록한 내용이다. 내용은 임명되어 부임지에 도착하기까지 여정, 암행어사로서 공적 업무 수행, 지역에 대한 소개와 관람, 지역 인사들과의 교류, 귀환하여 복명하기까지의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암행어사에 임명되어 평안도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하였다. 박래겸은 1822년(순조 22) 윤3월 16일에 평안도 암행어사가 되었다. 이후 그는 3월 21일에 빈한한 선비 차림으로 13인의 수행원들과 함께 한양을 출발하였다. 3일 후 황해도 남천(南川)에서 일행을 셋으로 나누어 정보를 수집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암행어사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고, 넓은 지역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둘째, 암행어사로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내용이다. 이는 출두 전 정보를 수집하는 암행(暗行)·염찰(廉察)과 신분을 드러내고 출두한 후 처분을 내리는 것을 들 수 있다. 박래겸은 출두 전, 45일간 21개의 고을에서 암행·염찰 활동을 하여 수령의 통치 상태와 민심의 향방 등을 집중적으로 탐색하였다. 그는 5월 13일 순안(順安)에서 처음 출두하여 7월 17일까지 12개 고을에서 차례로 출두하였는데, 이때 순안과 개천 두 고을에서 봉고(封庫)의 처분을 내렸다.

셋째, 지역에 대한 소개와 관람, 지역 인사들과의 교류를 기록하였다. 중앙 정계에서도 활동이 컸던 당시 성천부사 이기연(李紀淵)과 평양감사 김이교(金履喬) 등을 만났다. 또한 지역의 학식 있는 선비와 유학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그들의 학문에 감탄하였고, 과거시험의 문제점 등을 파악하였으며, 백성들을 만나며 환곡의 폐단을 파악하였다. 한편 박래겸은 평안도 지역의 명승지들을 답사하며 이를 소개하기도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방문객이나 관료들로 인한 폐단도 함께 파악하여 기록하였다.

마지막으로 7월 18일에 귀환길에 올라 7월 28일에 복명(復命)하는 내용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였다.

의의와 평가

『서수일기』는 관인으로서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보고 듣고 체험한 사실을 기록한 사환 일기이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관료 지식인의 현실 인식뿐만 아니라, 19세기 조선의 사회상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19세기 전반기 암행어사의 실제 활동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 시기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역사 등을 연구하는 자료로서 그 가치를 가지며, 일기 문학작품으로서도 그 중요성이 인정된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서수일기』(박래겸·박동욱 역, 푸른역사, 2013)
「조선시대 사환일기 연구: 박래겸의 『서수일기』를 중심으로」(박영호, 『동방한문학』45, 2010)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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