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일록(孤臺日錄)』은 4권 4책의 필사본 자료로, 정경운(鄭慶雲)이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선조 25) 4월부터 19년 동안 기록한 일기이다. 전쟁 발발 직후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으므로 당시 경상우도 지역 의병 활동 및 남명학파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동시에 전쟁 이후 향촌 사회의 복구 양상 및 사족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정경운이 쓴 원본 『고대일록』은 초서(草書)로 쓴 것인데, 이 책은 그의 제4자인 정주석(鄭周錫)이 소장하고 있었다.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1900년대 초에 8대손인 정동규(鄭東奎)에 의해 해서(楷書)로 다시 필사되었고, 9대손인 정용호(鄭龍鎬) 대에 와서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에 큰 불이 나서 원본 『고대일록』은 소실되었다.
이후 정인홍의 자손인 정이상이 6부를 복사하였으며, 1986년 경상대학교 오이환 교수가 이를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1992~1993년에 걸쳐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에서 『남명학연구』2, 3에 영인하여 소개하였고, 2001년에는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임진왜란사료총서』10으로 영인하였다. 2009년에는 남명학연구원에서 『고대일록』을 영인, 역주(譯註)하여 일반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필사본으로 4권 4책 총 257장이다. 권1은 1592년(선조 25) 4월 23일부터 1593년 12월 30일까지 2년간, 권2는 1594년(선조 27) 1월 1일부터 1597년(선조 30) 12월 30일까지 4년간, 권3은 1598년 1월 1일부터 1602년(선조 35) 12월 28일까지 5년간, 권4는 1603년(선조 36) 1월 1일부터 1609년(광해군 1) 11월 1일까지 7년간을 기록하였다.
1599년(선조 32) 6월 11일부터 1600년 5월 6일까지 약 11개월 동안의 일기는 누락되어 있다. 또한 원본 일기의 앞의 부분 10여장이 떨어져 나가 임진왜란 발발 초기 기록이 누락되어 있고, 결락된 부분 80여 곳은 ‘결(缺)’이라 표시되어 있다. 초서로 된 원본을 옮겨 베껴 쓰는 과정에서 글자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 옆에 점을 찍거나 글자를 빠뜨리고서 나중에 다시 곁에 작은 글씨로 첨가해 넣은 곳이 보인다.
책의 기술 방식은 다른 일기류와 별 차이가 없으나, 매해 정월 초하루의 기술에 있어서 『춘추(春秋)』의 기술 방식을 모방하였다. 예를 들어, 1593년(선조 26) 1월 1일 첫 부분을 보면 ‘이십일년 계사 춘 왕정월 병진 삭(二十一年癸巳春王正月丙辰朔)’이라 쓰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고대일록』은 함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 지역의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활동과 이 지역에서의 남명(南冥) 문인들, 특히 정경운의 스승인 정인홍(鄭仁弘)과 그의 동문인 김면(金沔), 조종도(趙宗道), 곽준(郭䞭), 이대기(李大期) 등의 의병 활동 내용이 잘 수록되어 있다.
기아와 살육, 국토의 황폐 등 전쟁으로 인한 참상과 전쟁 기간 중 이순신, 김덕령(金德齡) 등 여러 장수들의 활동, 명나라 군대의 행패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전쟁 이후 사족을 중심으로 한 향촌 사회 복구의 과정 및 조정의 정책에 대한 지역 사회의 동향 등이 수록되어 있다.
『고대일록』은 임진왜란 초기 의병 활동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그가 정인홍의 제자였으므로 당시 남명학파의 동향이 잘 나타나 있으며, 전쟁 이후 남계서원(濫溪書院)을 둘러싼 함양 지역 사회의 사족 동향과 전후 복구 양상 등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이외에 당시의 일기 상태 및 당시 사족의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