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현수지(治縣須知)』는 수령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업무능력을 키우는 지침의 내용을 서술한 목민서의 성격을 지닌 책으로 조선에서 최초로 저술된 책이다.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은 호남에 재지 기반을 두고 있던 사림이자 관료였다. 외조부 최부(崔傅)는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었고, 아버지 유계린(柳桂鄰)은 김굉필(金宏弼)에게 수학하였다. 그는 최산두(崔山豆)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김안국(金安國)과도 학연을 맺고 있었다. 과거 급제 후 관직생활을 할 때인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乙巳士禍)가 발생하였다. 이후 20여 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는데, 이때에『치현수지』를 편찬하였다. 이 책은 앞서 인종대 무장 현감으로 부임했던 시절의 경험을 살려 작성한 수령 행정 지침서였다.
선조 초기 귀양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경재소(京在所) 혁파론과 향약 실행론 등에 반대하였다. 이는 지방 출신으로 재지적 기반을 지닌 본인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었고, 국가 주도의 향촌 지배 방식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부정한 것이었다. 즉, 그는 옛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에서 수령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치현수지』는 유희춘이 무장 현감을 지냈던 관직 경험, 주자의 지방 통치를 위한 지침, 그리고 조선 사회에 축적되어 관행으로 내려오던 지방 지배의 경험 등을 조합하여 만들었다. 그는 책의 항목 중간중간에 『치현수지』를 만들며 활용한 자료들을 제시하여 자신의 이야기가 주관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닌 여러 근거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입장을 바탕으로 유희춘은 지방제 운영과 관련하여 수령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수령의 지방 통치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치현수지』는 모두 8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율신(律身), 어사(御使), 목민청송(牧民聽訟), 구언용민(求言用民), 치간근선(治姦勤善), 알성흥학(謁聖興學), 대사접빈(待士接賓), 독친념구(篤親念舊)가 그것이다. 구성상 8항목이지만 내용으로는 모두 14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는 수령이 자신을 규율함에 필요한 내용에서부터 이서배들을 통어(統御)하는 법, 백성들의 삶을 보존하고 소송(訴訟)을 처리하는 법, 군현의 정무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공론(公論)을 구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임용하는 법, 간악한 범죄를 처리하는 법, 백성들에게 착한 행위를 권장하는 법, 향교를 방문하는 예와 학교를 일으키는 법, 사대부를 대우하고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법, 육친(肉親)을 섬기고 친구를 대우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치현수지』는 수령에게 요구되는 덕성과 능력의 범주와 내용을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민간에서 개인이 마련하고 준비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수령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한 점, 주자의 치군(治郡) 경험을 적극 활용하고 그 의의를 강조한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비록 8조항의 내용이지만, 조선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목민(牧民)’을 위한 자료라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치현수지』는 조선 후기 목민서들의 체제, 문제의식을 제공한 저술로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