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활동하였던 서유구가 직접 농촌 생활을 하면서 시행하고 경험했던 농법을 바탕으로 하여 저술한 농서이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자는 준평(準平)이고 호는 풍석(楓石), 본관은 달성(達成)이다.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서명응(徐命膺)의 손자이고, 이조판서를 역임한 서호수(徐浩修)의 아들이었다가 후에 서형수(徐灐修)에게 입후되었다. 그는 서명응·서호수의 가학을 계승하였고, 특히 농학에 큰 업적을 남겼다.
서유구가 순창군수로 재직할 때, 도 단위 농학자들을 한 사람씩 두어 그 지방의 농업 기술을 조사하고 연구하게 한 후 보고하여 이것으로 전국적인 농서를 편찬하자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후 농업의 백과전서적 저술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로 집대성할 수 있었다.
『행포지(杏蒲志)』는 『임원경제지』를 저술하기 전에 집필된 책으로 보인다. 이는 『임원경제지』에 인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행포지』는 『임원경제지』를 저술하기 전, 그 기초적인 연구로 농업 기술과 농지 경영을 조사하는 것으로 저술이 이루어졌다.
『행포지』는 일본 오사카 나카노지마[大阪中之島] 도서관에 1권∼4권이 남아 있는데, 4권의 뒷부분은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동아시아 도서관에는 1권∼3권이 남아있다.
2010년 5권∼6권을 묶은 원고가 발굴되어 언론에 공개되었다. 이 원고는 ‘풍석암서옥(楓石庵書屋)’이라는 글이 새겨진 원고용지에 필사되어 있는 것으로 ‘풍석암’은 서유구가 젊은 시절 지금의 용산 부근에 만든 서재이다. 국내에서 발굴된 원고는 수집가 오환근씨의 장서였다가 1980년대 화봉문고에서 인수하여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버클리 대학 소장본과 한질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행포지』의 내용은 농법을 시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되었기에 작물의 재배법과 그 운영에 관한 내용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발굴된 5권은 ‘곡명고(穀名攷)’로 곡식의 이름과 종류에 대해 서술하였고, 6권은 ‘오해고(五害攷)’로 홍수와 가뭄, 병충해 등 농사에 해를 끼치는 다섯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행포지』는 서유구의 농학을 집대성한 『임원경제지』에 ‘금화경독기’와 함께 가장 인용 횟수가 많은 저술이다. 그런 만큼 조선시대 농학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저서이며, 고위 관료가 농업의 발달을 위해 연구하고 조사하였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조선의 환경에 맞는 재배법과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함으로써 실제로 농업에 도움을 주었던 실용적인 도서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