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 1668∼1734)은 지금의 대전광역시 남쪽 보문산(寶文山)을 조산(祖山)으로 삼아 자리를 잡고 집을 지었다. 그 뒤 화재로 불탔던 것을 1788년(정조 12)에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는데, 주변은 안동권씨의 집성촌이다. 종가의 위쪽 구릉에는 유회당과 함께 기궁재(奇窮齋), 삼근정사(三近精舍), 장판각 등이 위치하여 있다.
유회당은 ‘부모를 간절하게 사모한다’는 뜻이다. 종가의 주변은 사방이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준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사당, 모정으로 구성되었다. 안채는 낮게 쌓은 막돌 기단 위의 대청을 중심으로 ‘ㄱ’자형 공간 구성을 갖추었고, 앞면 4칸 · 옆면 2칸의 사랑채는 ‘일(ㅡ)’자형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사당은 전형적인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종가 입구에는 초가집인 모정(茅亭)이 자리하고 있는데, 사방에 모두 현판이 걸려 있다. 곧 남쪽에는 광영정(光影亭), 서쪽에는 수월란(受月欄), 북쪽에는 인풍루(引風樓), 동쪽에는 관가헌(觀稼軒) 등의 편액이 걸렸다. 광영정은 옛 시인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의 구절에서따온 것으로 광영정 옆에 있는 네모난 연못을 배회담(徘徊潭)이라고 부른다. 이 연못은 마을 위쪽에서 흐르는 물을 자연스럽게 모아 만들었는데, 물길은 광영정을 지나 마을로 흘러 나간다.
초가로 만든 모정이 마을의 주요 경관을 형성하면서, 자연을 관조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 이채롭다. 현재 종가에는 18세기에 종가 주변의 경관을 그린 그림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