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왕산추모제 ()

민속·인류
의례·행사
음력 8월 17일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유왕산 일원에서 백제 유민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개최하는 마을제사. 추모제.
정의
음력 8월 17일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유왕산 일원에서 백제 유민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개최하는 마을제사. 추모제.
개설

유왕산추모제는 매년 음력 8월 17일 부여 유왕산에서 백제가 멸망할 때 의자왕을 비롯하여 당나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혼령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개최하는 제향추모제이다. 유왕산 아래의 금강 변에서는 당나라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던 슬픈 날의 재현과 함께, 백제 유민들의 영혼을 불러 진혼하는 천도굿 등이 열린다.

연원 및 변천

백제는 660년 당나라에 멸망하였다. 그때 의자왕을 비롯하여 태자, 왕자 3명, 대신 88명, 백성들 12,807명이 당나라로 끌려갔다. 유왕산추모제는 당시 남아 있던 가족들과의 헤어짐을 슬퍼하여 주민들이 제를 올린 데서 유래하였다고 일컬어진다.

유왕산의 유래에는 ‘떠나는 왕을 잠시라도 멈추게 하려고 하였던 곳’이라는 설도 있고, ‘왕 일행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설도 있는데, 이는 유왕산이 폐망 당시의 유민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왕산 일대 주민들 사이에 매년 음력 8월 17일이 되면 사방 백 리에 흩어져 사는 부녀자들이 유왕산에 모여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재회를 기약하는 유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추모제가 음력 8월 17일에 열리는 것은 그날이 백제 유민이 끌려가던 날이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고증·재현되었다.

행사내용

‘추모제’와 ‘추모의식의 재현’이 행사의 중심을 이룬다. 첫날에는 추모제가 열린다. 먼저 전방호위대를 앞세운 삼헌관, 후방호위대, 제집사, 백제 유민 등 제향 참여단 행렬이 꾸며진다. 그들이 양화면사무소를 출발하여 암수리 유왕산에 이르게 되면 백제 유민의 넋을 추모하는 제향행사가 이루어진다. 이어서 유왕산풍물놀이와 주민노래자랑 등의 행사가 열린다. 유왕산풍물놀이는 망국의 한과 이별의 아픔을 춤과 노래를 통하여 승화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삶의 지혜가 민속놀이로 전래된 것이다.

이튿날에는 재현행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유왕산 비극의 재현’이다. 여기서의 재현은 당나라의 포로가 된 백제왕과 유민들이 12척의 군선에 실려 끌려가는 모습과 동시에 용인산 바위곶이에서 갓개포구, 유왕산, 금성곶이까지 떠나는 동안 여인네들이 왕과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던 날의 비극이다. 이때에 백제의 노래인 산유화가(山有花歌)를 부른다. 여기에 이어 당나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영혼을 마지막 뱃길이 된 금강에서 불러온다. 돌아온 혼백이 상여에 실려 유왕산에 오르면 그들 넋을 극락에 보내기 위하여 기원하는 의식이 열리는데 이것이 ‘천도굿’이다.

현황

매년 음력 8월 16∼17일 이틀에 걸쳐 300여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여군 양화면 유왕산 일대에서 열린다. 유왕산추모제 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충청남도 부여군이 후원하고 있다. 2015년부터 백제문화제에 통합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유왕산은 본래 백제 멸망에 따른 이별의 장소이자 동시에 고향을 떠나간 넋을 위로하는 추모의 장소였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함께 20세기 중반까지 유왕산은 줄곧 ‘반보기’의 장소로 전화되어 왔다. 반보기는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 부인네들이 두 집 사이의 중간쯤 되는 산이나 시냇가 등지에서 만나 서로가 장만해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것’을 뜻한다. 그런 반보기의 장소로부터 장소 본래의 성격인 추모의 장소로 재정립하는데 유왕산추모제가 역할을 하고 있다. 더불어 장소성 재정립은 주민들에게 백제문화와 백제정신을 소중하게 하고, 놀이행사는 주민들의 단합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부여군지』(부여군지편찬위원회, 2003)
『유왕산놀이 발전 세미나 자료집』(부여문화원, 1988)
『전통문화의 고장 부여』(부여군, 1982)
「백제유민의 넋을 기리는 유왕산추모제 봉행」(『충청신문』2015.10.5.)
집필자
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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