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승려 혼구의 언행을 수록한 불교서.
서지적 사항
내용
스승의 자리를 이어 강당을 열게 되자, 여러 사람을 거느릴 때는 규율 있게 하고, 불경(佛經)을 강의할 때는 하나로 그어 놓은 것같이 하였다. 충선왕(忠宣王) 즉위 후에는 그에게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을 제수하였다. 혼구는 침착 중후하고 말이 적으며 학문은 엿보지 않은 것이 없으며, 시와 문에 풍부한 실력을 가졌었다. 그가 죽자 왕은 부음을 듣고 슬퍼하였으며 보감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은 묘응(妙應)이라고 명명하였다. 저술은 『어록(語錄)』을 비롯하여 『가송잡저(歌頌雜著)』 2권, 『신편수륙의문(新編水陸儀文)』 2권, 『중편염송사원(重編拈頌事苑)』 30권을 남겨 당시 불교계에 유통케 했지만 현재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동문선(東文選)』
- 『익재난고(益齋亂藁)』
- 「조계종자씨산영원사보감국사비명(曹溪宗慈氏山瑩源寺寶鑑國師碑銘)」
- 『한국불교찬술문헌총록』(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동국대학교출판부, 1976)
- 『조선금석총람』(조선총독부,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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