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 1865년(고종 2)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재목을 모았다. 목재는 양양부 현북면 어성전 개자니골과 강릉부 연곡면 삼산리 가마골 경계선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공물로 바치기 위해서 베어놓은 목재를 서로 가져가려고 시비가 일어났다. 이에 힘센 장사들이 서로 힘을 겨루게 되었다, 강릉 연곡에 사는 권장사와 양양 탁장사가 경계선에 베어놓은 목재를 지고 가기로 약속했는데, 권장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양양 탁장사가 이것을 서림까지 지고 내려오면서 그 이름이 알려졌다고 한다.
‘서면 탁장사’ 전설에 의하면 왕실에서 임금의 관을 만드는 관재목인 황장목을 올리라는 영이 내리자 서면과 현북면의 경계인 정족산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어 두 고을에서 서로 제 것이라 주장하였다고 한다. 나무는 경계에 있으므로 베어놓고 힘센 사람 한 사람씩 골라 혼자 힘으로 지고 가는 고을에서 갖기로 하였다. 칡다래넝쿨을 모아 큰 밧줄을 만들어 엮고 현북쪽 사람에게 지고 가라 했으나 관재를 지고 일어서지 못하였다. 이때 서면에 탁(卓)이라는 사람이 초인적 힘으로 지고 일어서 서면 쪽으로 걸어갔다고 한다. 이리하여 관재는 서면 것이 되고 그 뒤부터 탁장사는 양양 제일의 역사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그 후 매년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탁장사 후계자를 뽑는 큰 잔치가 베풀어졌으며 장사가 난 마을에는 풍년이 든다 하였다. 탁장사는 양양군 서면 송천(소래) 출신의 탁구삼(卓龜三)이라 전한다. 탁장사의 구전설화는 탄생담, 힘 자랑, 힘 겨루기 설화 등으로 다양하게 구전되고 있다.
양양 주민 가운데 힘이 센 사람들이 미리 잘라놓은 황장목을 지게에 지고 가장 멀리 가는 사람을 탁장사로 호칭하고 상을 준다. 탁장사를 뽑기 위해 황장목을 지게로 지는 힘 겨루기가 진행된다. 먼저, 큰 원목을 지게에 올려 놓으면 제일 멀리까지 지고 가는 사람을 뽑게 된다. 여기에서 뽑힌 장사는 제2의 탁장사로 대우받는다.
첫째 마당은 나무터 오르기다. 양 고을 나뭇꾼들이 산에 오르는데 목동발을 치며 춤추고 양양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며 관목이 있는 나무터로 오른다.
둘째 마당은 목재 차지하기로 양 고을 촌장이 목재(나무)를 서로 자기 고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경계에 위치한 관계로 나무가 넘어지는 쪽에서 나무를 차지하기로 하고 산신제를 지낸다.
셋째 마당은 줄다리기로, 양 고을 나뭇꾼들이 나무에 다줄을 매고 지게 줄다리기를 한다. 다줄에다 지게 꼬리를 매고 힘을 다해 당기고 톱질꾼은 노래를 하며 나무를 자른다. 나무는 경계에 쓰러져 판단하기 어렵다.
넷째 마당은 장사 힘 겨루기로 양 고을 촌장이 의논하여 힘센 사람이 대표로 나와 지게로 지면 목재를 차지하기로 합의한다. 강릉의 가매소골 쪽의 권장사가 두세 번 지려고 했으나 땅뜀도 못하였고, 양양 개자니골 권장사는 단숨에 목재를 지고 양양쪽으로 걸어온다.
다섯째 마당은 탁장사 지게 가마 태우기이다. 목재를 차지한 양양 고을 사람들이 탁장사를 맞아 흥겹게 논다. 탁장사를 지게가마에 태우고 기쁨을 나누고 목재는 목도로 하산한다.
여섯째 마당은 양 고을 한마당 놀기로서 양양 사람들이 강릉의 나무꾼들과 함께 논다. 승패에 관계없이 화합과 협동, 단결을 의미한다. 농악대원, 장사, 촌장, 기수, 여자, 지게꾼 등 총 85명이 참여한다.
또한 탁장사마을의 탁장사 놀이의 체험 순서는 통나무 던지기, 통나무 줄다리기, 탁장사 지게 지기, 목도놀이와 뒤풀이로 끝을 맺는다. 현재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에는 탁장사 마을이 건립되어 있고, 탁장사 고을 전통문화축제의 일환으로 탁장사 마당놀이 및 기타 체험 행사를 갖고 있다.
양양탁장사놀이는 1984년 제2회 강원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우수상을 수상한 이후, 양양군의 현산문화제에서 ‘탁장사뽑기’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었다. 2014년에는 양양 탁장사 고을 전통문화축제가 양양 현북면 원일전리에서 테마 축제 형태로 열렸다. 이 행사에는 탁장사의 권역인 원일전리와 어성전 1 · 2리, 법수치리 등 4개 마을이 참여하였다. 탁장사놀이는 양양의 대표 축제인 양양문화제 기간에 각 마을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힘 겨루기 놀이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