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정시가단은 경상북도 문경 지역의 사족 채헌(17151795)이 1787년(정조 11) 현재 문경시 산북면 이곡리에 석문정을 세우고 친인척, 동학과 더불어 시가를 창작하고 향유하는 활동을 펼침으로써 성립되었다. 채헌의 아들 채시옥(蔡蓍玉, 17481803)을 비롯하여 채래(蔡淶), 채용(蔡溶), 채시로(蔡蓍老), 채시성(蔡蓍成), 채시강(蔡蓍康), 채시홍(蔡蓍弘), 조석철(趙錫喆), 이현조(李顯朝), 김명흠(金命欽), 김명우(金命禹), 김우량(金佑良), 김우직(金佑直), 이원양(李元陽), 이도양(李道陽), 이중목(李重穆), 이천섭(李天燮), 권준(權焌), 권경(權檾), 권녹인(權祿仁), 류일춘(柳一春) 등 채씨 일문과 그 인척, 인근 동리에 거주하며 동문수학한 이들이 시가단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이와 함께 가객(歌客) 박몽수(朴夢秀), 정언박(鄭彦璞), 금객(琴客) 장생(張生) 부자 등이 참여했다.
모임은 정기적으로 봄·가을에 계회를 열고 구성원이 시시때때로 석문정을 방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석문정12경(石門亭十二景)〉 〈제석문정(題石門亭)〉 〈월하수창(月下酬唱)〉 등의 한시, 채헌의 가사 2편과 시조 8수, 채시옥의 시조 2수, 정언박의 시조 1수 등의 국문시가가 창작되었다. 이들 작품은 『석문정집(石門亭集)』, 『석문정심진동유록(石門亭尋眞同遊錄)』 등에 실려 있으며, 시가단의 구체적인 활동상은 1787년 5월∼1803년(순조 3) 4월에 이르는 16년 동안의 기록을 담은 『석문정일록(石門亭日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795년 채헌이 세상을 떠난 이후 석문정시가단은 채시옥의 주도 아래 활동을 이어갔다. 채시옥은 1802년 이천섭 등과 함께 〈석문기회록(石門奇會錄)〉을 작성하고 『석문정심진동유록』을 재전사하는 작업을 하였다.
혈연, 학연, 지연으로 맺어진 구성원의 특징이나 석문정과 주변의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창작된 작품의 성격에서 볼 때, 석문정시가단의 활동은 지역 사회의 생활문화로서 의미를 지닌다. 예천 용궁의 이중목, 이천섭 등이 주요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선산의 이오(李墺), 길한상(吉漢相) 등이 석문정을 방문하여 〈경차석문정운(敬次石門亭韻)〉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영주 순흥의 정언박을 비롯하여 가객과 금객이 그 명성을 듣고 드나들었다는 점에서 석문정시가단의 문화적 영향력은 문경을 넘어 예천, 선산, 영주 등에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석문정시가단의 의의는 18세기 말∼19세기 초 향촌사회에서 이루어진 시가단의 성립 및 활동, 그 가운데 창작·향유된 시가의 내용을 조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