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용해로는 금속기 주조 시 철, 청동 등의 원자재를 녹여서 액체 상태로 만드는 가마이다. 무질부리가마라고도 부른다. 고체 상태의 금속을 고온으로 녹일 때 사용하는 통 모양의 가마이다. 녹는 온도가 낮은 비철금속은 도가니를 사용하는데, 녹는 온도가 높은 철은 숯 등을 함께 넣고 고온에서 직접 녹이는 노를 사용한다. 용해로는 철기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노를 의미한다. 점토에 볏짚 등의 초본류를 섞어 쌓아 올려 원통형 혹은 원추형으로 만든다. 용해로를 이용한 철기 주조 기술은 서기전 2~1세기경 한반도로 전파되어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다가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다.
정의
금속기 주조 시 철, 청동 등의 원자재를 녹여서 액체 상태로 만드는 가마. 무질부리가마.
개설
연원 및 변천
철 주조용 용해로는 청동 주조용 용해로 혹은 도가니보다 높은 온도를 견뎌야 하므로 두께가 더 두텁고 내화성이 뛰어난 재료를 사용하였다. 초기에는 크기가 작은 노에서 끌, 괭이 등의 소형 철기를 제작했으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점 커져 조선 말기에는 한 번의 용해조업으로 50개의 가마솥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현대의 제철에서는 고로(高爐)를 사용해 원광에서 곧바로 용융상태의 선철(銑鐵)을 생산하기 때문에 용광로(鎔鑛爐)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어 있다.
내용
용해로는 점토에 볏짚 등의 초본류를 섞어 쌓아 올리는데, 발굴된 유적이나 조선후기 풍속도 등으로 보아 원통형 혹은 원추형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거푸집은 점흙이라고 하는 부드럽고 점성이 강한 황토를 이겨 원하는 철기의 틀로 성형한 다음 가마에서 구워 사용한다. 철기의 주조에는 용해로뿐만 아니라 노에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한 풀무와 송풍관(바람골), 원하는 기물의 틀이 되는 거푸집, 작업을 위한 각종 도구 등 다양한 시설장비가 필요하다.
현황
이 외에도 원삼국~삼국시대 연천 삼곶리, 진천 석장리, 울산 중산동, 광양 도월리, 서울 풍납토성, 경주 덕천리, 전주 중동 큰동네, 통일신라~고려시대 거창 정장리, 동해 지상사지, 조선시대 울산 둔기리, 하동 탑리 등의 유적에서 용해로 및 주조와 관련된 유구⋅유물이 조사된 바 있다.
이 유적들에서는 주조에 사용되었던 거푸집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은데, 황성동유적을 포함한 원삼국~삼국시대 유적은 주조괭이 거푸집 일색이고 둔기리유적을 비롯한 통일신라~조선시대 유적에서는 주로 솥의 거푸집이 출토되었다. 이 외 지상사지에서 조사된 유구는 종을 제작했던 주종(鑄鐘) 유구로 추정되고 있으며, 19세기 후반 풍속도인 김준근의 가마점에는 앞창이 있는 직경 3m 정도 크기의 원추형 용해로가 묘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불미기술 』(윤용현 외, 국립중앙과학관, 2013)
- 『한반도의 제철유적 』(김권일 외,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2012)
- 『한국 산업사 연구 』(권병탁,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4)
- 「영남지역 조선시대 제철문화의 기초적 연구-석축형제철로의 설정-」(김권일, 『영남고고학』50, 2009)
- 「경주 황성동유적 제철문화의 연구」(김권일, 『영남문화재연구』 22, 2009)
- 「한반도 초기철기문화의 유입 양상」(이남규, 『한국상고사학보』 3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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