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 제철유적의 하나로, 제철조업과 관련된 45기 이상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주요한 유구를 살펴보면, 구상유구는 물을 이용해 비중선광(比重選鑛)을 하던 선광장으로 추정되었으며, 수혈유구 중에는 선광된 철광석을 소결시키는 배소유구(焙燒遺構)와 배소된 광석을 제련하는 제련로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패각 소성유구(燒成遺構)와 저장유구는 제련 시 조재제(造滓劑)로 사용할 패각을 소성 및 저장하던 곳으로, 도로유구와 우물은 원광석 및 생산품을 운송하고 조업에 필요한 급수를 공급하기 위한 용도로, 제사유구는 성공적인 제철조업을 기원하던 제의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또한 유적에서는 철광석·송풍관·노 벽체편·철괴·유출재 등 다수의 제철관련 유물이 출토되었다.
양산물금유적의 배후인 오봉산(황산) 서쪽 사면에는 15세기부터 1995년까지 철광석을 채광했던 양산 물금광산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서북쪽 약 11㎞ 거리의 김해 상동광산을 비롯해 밀양 미촌리 유적(사촌제철유적)·임천리 유적(금곡제철유적), 김해 하계리·여래리 유적, 창원 봉림동 유적 등 제철유적이 분포한다.
양산물금유적은 58세기 제철조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편년되는데, 이 유적들 역시 47세기로 편년되고 있어 당시 이 일대에 한반도 최대규모의 제철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삼국시대 낙동강을 경계로 양산·밀양 지역은 신라, 김해·창원 지역은 가야의 고지(古地)이기 때문에, 당시 철산지를 확보하기 위한 신라와 가야의 각축이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양산물금유적은 오봉산(530m)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구릉이 끝나고 평지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다. 서쪽 22.45㎞ 거리에는 낙동강이 북서에서 남동으로 흐르고, 동쪽 1.72.2㎞ 거리에는 양산천이 남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하며, 유적 앞쪽으로는 양산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양산시립도서관과 디자인공원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 범어리유적이, 남쪽에 가촌리유적이 서로 45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위치한다.
양산 물금지역 신도시 개발사업에 앞서 19971998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가촌리유적에는 삼국시대 수혈주거지 2동·수혈유구 13기·소형수혈 및 주혈군이 밀집분포하며, 범어리 유적에서는 삼국통일신라시대 수혈유구 24기·우물 2기·도로유구 1기·부석(敷石) 구상유구(溝狀遺構) 3기 등 모두 30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제철로(製鐵爐)로 추정되는 유구는 상부의 삭평이 심해 원래의 형태를 알기 어렵다. 대부분 원형 혹은 방형에 가까운 평면형태를 가지며, 내부에 고온에 의해 붉은색으로 경화된 둥근 부분이 있거나, 노 벽체편·철광석·대구경 송풍관·철괴·유출재 등이 출토되어 원통형의 노(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노의 크기나 출토유물로 보아 상당수가 제련로인 것으로 보이지만 후속공정인 단야조업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패각 저장 및 소성유구에서는 제첩·개조개·굴 등의 패각이 다량 검출되었으며, 경사진 부석 구상유구에서는 위치에 따라 크기가 서로 다른 철광석이 다량 출토되어 물의 흐름을 이용해 철광석을 선별하던 장소로 판단되었다. 제사유구에서는 고배류를 중심으로 한 토기의 의도적 매납현상이 관찰되었다.
출토된 철광석은 대부분 자철광석이고, 크기는 다양하지만 5㎝ 미만의 선광된 것도 많다. 노 벽체편은 출토량이 많지 않지만 식물성 섬유가 혼입된 점토덩어리들이 상기한 각종 제철관련유물들과 함께 출토된 점으로 보아 제련로의 벽체로 추정된다. 철괴는 적갈색을 띠는 등 외관상으로는 철성분이 많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나 금속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성분을 알 수 없다. 유출재는 조업 중 노 바깥으로 흘려 내려 쇠똥처럼 층층이 쌓인 전형적인 제련재이다. 송풍관은 상당히 많은 양이 출토되었는데, 잔존상태가 좋지 않아 정확한 크기와 형태를 알기 어려우나 대부분 직경 13.1~18㎝의 일자(一字)형 직관(直管)이며, 외면에 자성이 강한 철재가 용착된 것이 많다.
유적에서 출토된 5점의 철재에 대한 금속분석 결과, 산화칼슘(CaO)과 이산화티탄(TiO₂) 함량은 그리 높지 않았고 철의 잔유량(全鐵量)은 30~50%로 확인되었다. 또한 올리바인(olivine)과 마그네타이트(magnetite) 조직이 주상(主狀)으로 나타나 제련 시 철 성분과 불순물의 분리를 원활히 하기 위해 패각을 첨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산물금유적에서는 제철로로 추정되는 많은 노의 흔적과 선광유구, 배소유구, 패각 저장 및 소성 유구, 도로유구, 우물 등의 관련 유구가 조사되었으며, 철광석·유출재·대구경 송풍관·패각 등의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유구 및 유물의 특징으로 보아 물금유적에서는 제련조업이 주목적이었으며, 후속공정인 단야(정련단야·단련단야·성형단야) 공정이 공존했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의 고대 유적 중 연천 삼곶리, 화성 기안동, 진천 석장리, 경주 황성동, 밀양 미촌리·임천리, 양산 물금유적 등이 대형 제철유적에 해당되는데, 이 중 물금유적은 제련과 관련된 유구 및 유물이 가장 많고 확연한 유적의 하나이다.
양산물금유적은 대규모 제련유적임과 동시에 제련공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선광, 배소, 패각의 저장·소성 등과 관련된 유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입지와 규모, 제련공정의 중요성, 고대 철의 생산·유통 체계 등으로 보아 신라왕경에서 지방관을 파견하는 등 제철조업을 직접 관리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신라의 중요한 산업기지 역할을 담당했던 유적으로서, 고대의 제철기술 및 신라의 산업과 대외관계 등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