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김해 율하리 유적은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돌널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묘역식 고인돌과 돌널무덤 106기, 주거지 52동, 건물지가 발굴되었다. 삼국 및 통일신라, 고려·조선시대 건물지와 무덤 등도 조사되었지만 율하리 유적은 청동기시대 유구가 중심이다. 청동기시대 묘역식 고인돌은 크고 작은 묘역을 연접하여 거대한 군집을 이룬다. 돌널무덤은 판석을 이용하여 상자형과 자갈돌을 쌓아 올린 석곽 형태로 구분된다. 율하리 유적은 분묘·의례 공간과 주거 공간이 분리된 발전된 형태의 취락유적이다.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돌널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개설
통일신라시대 무덤은 배후산지의 말단 구릉에 조성되어 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시대 묘역식 고인돌과 돌널무덤 106기, 주거지 52동, 수혈 · 굴립주 건물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무덤 6기,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건물지와 무덤 등 여러 시대의 다종다양한 유구들이 조사되었다.
내용
청동기시대 취락은 주거 · 저장 · 무덤 · 의례의 공간이 서로 분리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무덤과 주거공간의 구분은 뚜렷하다. 무덤공간은 구릉 말단과 저지대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묘역식 고인돌은 가장 규모가 큰 A2-19호묘를 중심으로 연접해서 배치되어 있다. 외곽으로 몇 기의 돌덧널무덤과 고인돌이 소규모 군집을 형성하기도 한다.
율하리유적 고인돌은 상석과 묘역을 갖추고 있으며 매장주체부는 깊게 굴착하여 조성하고 있다. 매장주체부는 다중 개석인데, 1단으로 덮은 것부터 6단까지 존재한다. 묘광은 깊고 넓은 편인데, 단을 지며 점차 좁히면서 깊게 굴착하였다. A1-11호묘의 경우 묘광의 길이는 1,370㎝, 너비는 830㎝, 깊이는 240㎝에 달한다. 묘역은 원형과 장방형으로 구분되며 A2-19호묘의 경우 묘역의 잔존 규모는 길이 20m 정도이다.
묘역식 고인돌은 크고 작은 묘역을 연접하여 거대한 군집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돌널무덤은 판석을 이용하여 상자형으로 축조한 것과 자갈돌을 쌓아올려 석곽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구분된다. 일부는 목관의 흔적도 확인된다. 돌널무덤은 길게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거나 여러 기가 군집을 이루고 축조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주로 구릉 사면에 조성되는데, 주거영역에는 저장공간과 생산공간이 배치되고, 일부 무덤이 열을 지어 분포하기도 한다. 매장영역에는 굴립주 건물지를 중심으로 한 의례공간이 포함된다.
삼국시대 무덤은 돌덧널무덤 2기가 조사되었는데, 서로 250㎝ 정도 이격되어 있고, 봉분이 유실되어 확실치 않지만 호석과 주구의 잔존 상태로 보아 주곽과 배장곽일 가능성이 높다. 출토 유물은 갑옷편과 철촉, 짧은목항아리(단경호) 등이 있는데 이로 보아 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무덤은 장방형의 횡구식석실 4기로 경사면을 따라서 등간격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석실의 높은 쪽 경사면에는 호석과 주구를 갖추고 있다. 한 번의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출입구는 낮은 쪽 경사면에 위치한 단벽을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장군형토기 · 편구병 · 유개대부완 등이며, 이로 보아 석실들은 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김해 율하리유적』(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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