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을 조망하는 자마산 정상부에 유적이 입지하며, 조개더미는 Ⅰ, Ⅱ지구로 구분된다. Ⅰ지구는 해발 240m되는 자마산의 정상부에서 남동향의 구릉부에 위치한다. 패각의 분포범위는 해발 216m 전후의 평탄한 대지와 남쪽 사면의 계곡부에 형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최영희에 의해 알려진 뒤, 그 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1959년, 1961년, 1964년 3차에 걸쳐 발굴조사 하였다.
조개더미의 층위는 부식토층, 점토층, 패각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거지와 석관묘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토기 37,000점, 철기 83점, 골각기 260점이 수습되었다. 출토 유물 중에는 사슴뼈를 활용한 골각기류와 조개·소라·굴 등의 어패류, 낚시바늘, 복골, 작살, 그물추 등이 포함되어 있다. 토기는 와질, 연질, 도질제 등이 섞여 있고, 주요 기종은 노형토기·호·고배·기대·시루 등이다. 노형토기는 와질제와 도질제가 있는데, 와질제는 비교적 소형이며 3세기 후반에 낙동강 하구에서 유행하는 형식이다. 철기류에는 도자·겸, 낚시바늘 등이 있다. 이밖에 지석, 유구석부, 방추차 등의 유물도 출토되었다. Ⅱ지구는 웅천 일대를 바라볼 수 있는 능선 사면에 위치한다. 패각의 흔적은 구릉 정상부의 패총에서부터 남동향의 대략 120~200m 정도의 구릉 사면까지 확인된다. 채집유물은 패각과 호를 중심으로 한 토기류이다. 출토 유물은 대략 4세기에 해당한다.
조개더미 주변에서 확인된 웅천고분군은 자마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주능선과 경사부를 따라 넓게 형성되어 있는데 출토 유물로 보아 가야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웅천조개더미는 인근의 용원유적, 마천유적, 석동-자은동유적, 여좌동유적 등의 조개더미가 대개 100m 이하의 구릉에 입지한 것과 달리 해발 200m 전후의 비교적 높은 산 정상부에 형성되고 있어 소위 고지성 취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형성 시기는 3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입지와 형성 시기를 보여주는 유적은 남해안 일대에 다수 알려져 있다.
자마산 일대는 조망권이 탁월한 해발 200~240m 정도의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장기간에 걸쳐 조성된 취락과 고분군, 조개더미는 물론 산성까지 확인되고 있어 남해안의 역사를 밝혀 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