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879년에 경주 남산의 선방사에서 탑을 조성하고 사리를 봉안한 사실을 적은 탑지.
개설
내용
사업의 추진은 모두 승려들이 담당하였다. 상화상(上和上) 충심(忠心)을 중심으로 다음은 지훤(志萱)이 주도하였으며, 승려 임전(林典)과 도여(道如)가 대백사(大伯士)의 일을, 승려 지공(志空)이 유나를 맡았다.
의의와 평가
김시습의 『매월당집(梅月堂集)』에는 선방사에 이미 민가가 들어섰고, 오로지 한 건물만이 쓰러질 듯 홀로 남았다고 적고 있는데, 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그 당시에 탑은 붕괴되어 있었던 듯하다. 1980년대 발굴조사결과 동서의 대각선 방향으로 두 탑지는 대략 7×7m의 크기로 확인되었으며, 탑상륜부로 추정되는 불상이 새겨진 석재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 『매월당집(梅月堂集)』
- 『한국금석문집성 14 -신라10 조상명-』(김복순·한정호, 한국국학진흥원, 2012)
- 『역주 한국고대금석문』Ⅲ(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신라시대 이두문의 해독」(남풍현, 『서지학보』 9, 1993)
- 「선방사(배리)삼존석불입상의 고찰」(문명대, 『미술자료』 23, 1978)
- 「新羅時代の金銀に就いて」(黑田幹一, 『海東』 第拾號,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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