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형제가 죽은 뒤 그 처를 취하여 아내로 삼는 혼인 풍속.
개설
내용
한편 『삼국지』 동옥저전(東沃沮傳)에서 언어나 음식 · 거처 · 의복 등의 예가 고구려와 비슷하다고 했으며, 예전(濊傳)에서 시집 장가가고 상례와 장례를 치르는 풍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는 표현을 통해 동옥저와 예에서도 취수혼이 행해졌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다만 삼한 및 이를 이은 신라와 백제사회에서는 취수혼에 대한 전승이 보이지 않아 북방 유목민족 계열에서 주로 행해졌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변천과 현황
그런데 취수혼의 사례가 보이는 산상왕대는 고구려 왕실이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전환되는 시기로 왕권강화 과정에서 부자상속을 확실하게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추구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고구려 동천왕대 이후는 취수혼이 더 이상 확인되지 않아 왕실에서는 3세기 전반에, 그뒤 점차 일반적으로 소멸되어 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취수혼이 소멸된 배경으로는 사회분화의 진전과 함께 친족관계의 분화와 한(漢)문화의 영향을 지적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지(三國志)』
- 「고구려 산상왕의 "취수혼 사건"」(엄광용, 『사학지』 38, 2006)
- 「2세기말 3세기대 고구려의 왕실혼인 -취수혼에 대한 재검토를 중심으로-」(김수태, 『한국고대사연구』 38, 2005)
- 「고구려 혼속에 관한 소고」(박정혜, 『인문과학연구』 16, 성신여자대학교, 1997)
- 「고구려가족제도와 취수혼제」(이영하, 『논문집-인문·사회과학편』 25, 공주사범대학, 1987)
- 「고구려 초기의 취수혼에 관한 일고찰」(노태돈, 『김철준박사 화갑기념 사학논총』, 1983)
- 「조선원시제종족의 혼인」(장승두, 『조선』 281·282, 193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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