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조선에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 약업자들은 일본인 약업조합을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경성약업조합은 1917년 2월 14일 일본인 약업조합을 계승하는 동시에 조선인 약업자까지 포함하는 단체로 탄생했다.
창립 당시 조합장으로 일본인 1명, 부조합장으로 일본인 1명·조선인 2명, 회계로 일본인 1명·조선인 1명, 평의원으로 일본인 8명·조선인 4명을 두었다. 조합장은 산안우태랑(山岸祐太郞), 부조합장은 천야정지조(淺野正之助)와 민강(閔橿), 회계역은 신정호태랑(新井虎太郞)과 이응선(李應善), 평의원은 고성구지조(古城龜之助), 목촌진삼랑(木村眞三郞), 관야구치(關野龜治), 삼천정차랑(森川定次郞), 고송길삼랑(高松吉三郞), 산전일이삼(山田一二三), 후등정일(後藤正一), 강기청치(岡崎淸治), 이흥국(李興國), 이종덕(李鍾德), 김동원(金東遠), 현창운(玄昌運)이었다.
1922년에 용산의 약업조합을 합병하였다.
경성약업조합은 약국에 장기 근속한 점원들을 포상하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였다. 또 1932년에는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113원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경성약업조합은 식민지 시기 경성에 거주하는 약업인들의 단체였다. 구체적인 활동으로 장기 근속자 포상 등이 주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대외적인 활동보다는 대내적인 결속에 중점을 두고 조합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