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2년 경기도 시흥군에 설립된 섬유 제조 기업.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조선직물주식회사는 1944년에 동양방적주식회사 안양공장과 함께 징발되어 조선비행기주식회사로 전용되어 비행기 제작에 활용되기도 하였다. 박흥식(朴興植: 화신그룹 창업자)이 주도했던 이 사업은 1944년 5월부터 시운전을 시작하여 6월부터 일부 작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직원이 650명, 공원이 약 1700여 명이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해방 이후 귀속 기업체였던 조선직물주식회사는 1952년에 금성방직의 김성곤(金成坤: 쌍용그룹 창업자)에게 불하되어 운영되다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전후 원조기관과 정부의 지원을 통해 새로운 설비로 재건된 금성방직은 1968년에 대한농산[회장 박용학(朴龍學)]에 인수된 이후 1973년에 주식회사 대농(大農)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1977년까지 운영되었다.
기능과 역할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朝鮮纖維要覽』(橋口秀孝, 京城: 朝鮮織物協會, 1943)
-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京城: 東亞經濟時報社, 1933; 1935; 1939
- 『피의자신문조서-박흥식』(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1949)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8.2, 8.13; 1957.7.13.)
- 안양역사관(www.ayac.or.kr/museum/anyang_history/anyang_history_2.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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