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뮤니스트』는 러시아현대사문서보관연구센터에 보관되어 있으며, 1931년 3월에 창간호를 내고 1932년 7월에 6호까지 내었다. 『콤뮤니스트』 7호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다른 자료를 통하여 글의 제목은 알 수 있다.
『콤뮤니스트』 4호의 「편집여언(編輯餘言)」에 의하면 김단야 등은 창간호(1931년 3월)와 2·3호(1931년 5월) 합본호를 낸 뒤, ‘적의 끊임없는 체포와 추격’ 때문에 10개월 동안 『콤뮤니스트』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32년 3월과 7월에 4호와 6호를 냈다. 또 『콤뮤니스트』 6호의 「노동자통신란!!! - 다음호부터 특설(特設) -」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들이 7호부터 노동자가 직접 쓰는 ‘노동자 통신란’을 마련하여 “공장 형편, 공장 생활, 노동자 투쟁, 동맹파업의 준비와 경과 등의 산소식을” 실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콤뮤니스트』는 7호를 끝으로 다시 출판되지 못한 듯하다.
김단야는 잡지를 다시 출판할 때 그 잡지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콤뮤니스트』의 글을 다음과 같이 유형화하여 코민테른에 보고했다.
조선공산주의자의 당면임무에 대하여(1호)
탁류에 역하여(2호)
공장내에 야체이카(factory nuclesis)를 어떻게 조직할까(2호)
어떻게 테러에 맞서 싸울것인가(5호)
과거 1년과 조선공산주의자의 당면임무(4호)
공황과 전쟁시기의 한국공산주의자의 임무(7호)
한국문제에 대한 스탈린 서한의 중요성(5호)
2 노동조합운동 분야에 대해서
조선혁명적노동조합의 임무(1호)
사회주의건설에서 소비에트노동조합의 역할(2호)
파업을 어떻게 지도할까(4호)
프로핀테른 제8차 플레늄과 조선노동조합운동 좌익의 임무(4호)
농민투쟁을 다룬 특별기사
토지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자 1부(5호), 2부(6호)
두개 세계(2호)
소련에서 제1·2차 5개년 계획(5호)
소련 노동자의 지위(7호)
세계제국주의의 소비에트연방에 출병계획을 파쇄(破碎)하라(1호)
사회파시스트적 출병주의자들을 배격하라 - 소벳트연방옹호를 위하야(2호)
목전에 절박한 소벳트전쟁과 우리의 임무(6호)
자라나는 중국소벳트혁명(6호)
일본의 만주점령을 반대하라!(4호)
일본의 만주점령과 조선노동계급의 임무(5호)
일본의 만몽적극정책(滿蒙積極政策)의 정체(正體)(초역(抄譯))(6호)
제2조선으로서의 만주국(6호)
상해폭탄사건은 무엇을 말하느냐?(이우(爾友))(6호)
『콤뮤니스트』에서는 당 활동에 대한 것을 정기적인 쟁점으로 삼아 조선의 정치·조직 문제와 코민테른의 결정들을 다루려고 했다. 이들은 『콤뮤니스트』 출판, 국내 배포망 형성, ‘독자반’ 구성, ‘노동자 통신란’ 등을 두어 현장과 정치 그리고 공장과 전국을 연결하여 당을 재건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김단야·박헌영 등은 『콤뮤니스트』를 통해 선전과 선동 그리고 조직 활동을 연결시키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