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핀테른은 1921년 7월 3일 창립되었으며, 코민테른[제3 인터내셔널]의 외곽 조직이다. 태평양노동조합은 프로핀테른의 지도하에 중국·소련·일본·자바·조선·프랑스·영국·미국 노동조합이 참가하여 1927년 상해에서 닻을 올렸다. 프로핀테른은 이미 1922년에 태평양노동자연합을 만들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1924년 6월에 태평양 연안에 있는 각국의 운수노동자연합이 만들어지면서부터 태평양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바탕이 생겼다. 프로핀테른은 1937년 12월에 해산했다.
1927년 5월 열린 제1회 범태평양노동조합회의에서는 규약을 통해서 설립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①태평양 연안 열강 상호 간의 전쟁의 위험에 대하여 공동 투쟁을 할 것.
②중국 혁명을 위협하고 있는 제국주의적 위험을 저지할 것.
③태평양 연안의 모든 피억압 국민이 제국주의의 굴레에서 해방하는 것을 도울 것.
④지금도 여전히 피착취 계급이나 피억압 국민을 분열시키고, 착취자와 억압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모든 인종적·민족적 편견과 투쟁하여 이것을 제거할 것.
⑤태평양 연안 국가에서 피착취 계급의 진정한 형제적인 통일전선을 굳건히 유지할 것.
⑥억압자인 열강에 대항하여 피착취 계급과 피억압 국민의 공동 행동을 조직하고 수행할 것.
⑦세계 노동조합의 통일을 위하여 또한 단일한 통일적인 노동조합 인터내셔널의 창설을 위하여 투쟁할 것.
1927년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무한 정부(武漢政府) 치하의 한구(漢口)에서 제1회 범태평양노동조합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 쟈바, 중국, 조선, 일본 등 8개국 노동조합 대표가 참가했다. 조선 대표로는 조봉암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설 기관으로서 범태평양노동조합 비서부를 상해(上海)에 두기로 결정하였다. 서기국은 기관지 『태평양노동자』(영어판과 중국판)를 발행하였다.
제2회 태평양노동조합회의는 서기국이 소집하여 1929년 8월 15일부터 21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다. 1929년 이후에는 ‘범’이라는 접두어가 생략되었는데, 라틴아메리카에 노동조합 서기국이 설립된 것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2회 대회에는 ‘서울파’ 김영만이 참여했다. 범태평양노동조합과 관련해서는 식민지 조선에서 좌익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했던 이른바 ‘태로(太勞)사건’이 있다.
태평양노동조합은 프로핀테른 산하 조직으로서 각국의 노동조합을 국제적으로 연결시키려는 단체였다. 프로핀테른은 개량주의 노동조합을 반대하고 '가장 선진적이며 의식적인 노동자들로 노동조합 안의 혁명적 반대파'를 결성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러한 노선에 따라 태평양노동조합은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에서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노동자의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을 이끄는 ’혁명적 노동조합‘을 구축하려 했다. 태평양노동조합은 태평양 노동운동을 세계 노동운동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했으며, 『태평양공보』, 『태평양월보』, 『태평양노동자』 등을 발행했다.
제1회 범태평양노동조합회의는 동양의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의 노동운동 대표자가 비로소 한 곳에 모여 반제국주의, 반전의 정신에 따라 행동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적색 노동조합 인터내셔널이 내세운 ‘혁명적 반대파’ 노선이 ‘좌 편향’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태평양노동조합도 정치 투쟁을 앞세운 ‘좌 편향’이었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