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년(신문왕 5) 12월에 일본에서 당(唐)에 보냈던 학생(學生) 토사숙예생(土師宿禰甥)·백저사보연(白猪史寶然)과 백제를 구원하려고 파견되었다가 당에 포로가 되었던 저사연자수(猪使連子首)·축자삼택연득허(筑紫三宅連得許)를 일본으로 보낼 때, 김물유가 이들을 축자(筑紫)까지 호송하였다. 이듬해 3월에 일본 정부는 축자에서 김물유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고, 이후 곧바로 신라로 돌아왔다. 이때 김물유는 일본으로 표류해 갔던 신라인 7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한편, 690년(신문왕 10)에 신라에서는 대나말(大奈末) 김고훈(金高訓)이 송사(送使)로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일본 정부는 축자의 대재부(大宰府) 하내왕(河內王) 등에게 조서를 내려 김물유의 예에 따라 잔치를 베풀고 물건을 주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