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신륵사에 있는 조선전기 팔각원당형 석조 불탑. 사리탑.
개설
내용
탑신부의 탑신석은 각 면에 우주를 모각하여 사각형으로 구획한 후 그 안에 범자 또는 자물쇠 문양을 새겨 넣었다. 그래서 탑신석 2면에는 봉황문(鳳凰紋)이 새겨진 자물쇠가 표현되었고, 4면에는 범자가 1자씩 새겨졌다. 옥개석은 하부에 1단 받침을 두고 낙수홈을 마련하였다. 옥개석의 처마부는 거의 수평을 유지하고 있으며,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낙수면이 만나는 합각부에는 마루부를 반원형으로 표현하였는데, 처마 쪽으로 내려가면서 굵고 높아지도록 하였다. 옥개석의 마루부 끝 처마부에는 좌우 대칭을 이룬 귀꽃을 높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점은 조선시대 부도에서 많이 나타난다.
상륜부는 하부에 마련된 받침대가 파손되어 원형을 알 수 없지만 현재 원형의 복발석(覆鉢石)과 보주석(寶珠石)이 올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부도 표면에 주인공이나 건립 시기 등을 알 수 있는 명문이나 관련 기록이 없다. 다만 신륵사에는 고려 말기인 1376년 건립된 보제존자 석종이 있는데, 관련 기록에 보제존자의 제자들이 신륵사에 주석하며 조선 전기까지 많은 불사를 주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도의 주인공은 조선 전기 보제존자의 법통을 이으면서 신륵사를 중창하였거나 신륵사에서 입적한 승려일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는 불교계가 위축되고 승려들에 대한 대우가 낮아지면서 부도의 건립이 왕실과 관련된 승려들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신륵사에 팔각원당형 부도가 건립되었다는 것은 당시 신륵사에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승려가 머물렀거나 상당한 위상이 있었던 사찰이었음을 방증해 준다.
탑신석에서 자물쇠와 범자가 함께 새겨진 예는 조선 후기 부도에서는 여러 기가 확인되고 있지만 신라와 고려시대 부도에서는 드물다. 우리나라에서는 범자가 밀교적인 색채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신륵사 팔각원당형 부도의 탑신석 4면에 새겨진 범자는 사천왕상을 상징하는 종자(種字)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 부도는 탑신석에 조각상으로서의 사천왕상을 새기지 않고, 사천왕상을 상징하는 범자를 새긴 드문 예로서 밀교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중요하다.
참고문헌
- 「조선 세조 대의 불교 미술 연구」(엄기표, 『한국학연구』 26, 2012)
- 「고려∼조선시대 범자 진언이 새겨진 석조물의 현황과 의미」(엄기표, 『역사민속학』 36, 2011)
- 「조선 전기 석조 부도 양식의 일고찰」(정영호, 『동양학』 3, 1973)
- 「여주 신륵사 일명(逸名) 부도 내 발견 사리합」(정양모, 『고고미술』 9-5, 196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