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인상공회는 해방 이후 오사카 등 일본 각지에서 재일한국인 상공인이 결성한 단체이다. 재일한국인상공회는 재일한국인 상공인에 대한 경제적 지원, 한일경제 및 지역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53년에 오사카한국인상공회가 창립된 후 재일한국인상공회 조직의 움직임이 없다가 1961년 이후 도쿄 등 타 지역에도 재일한국인상공회가 설립됨에 따라 1962년 지역별 한국인상공회의 통일 조직으로서 재일한국인상공회연합회(한상련)가 출범했다. 한상련은 재일한국상공회의소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재일한국인상공회는 ‘재일 동포 사회의 생활 향상과 경제적 발전, 조국의 경제적 발전, 지역사회(일본)에의 공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해방 후 일본에 잔류하게 된 재일 동포는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1945년 9월부터 각지에서 조선인 상공회 또는 실업회를 결성했으며, 1946년 2월에는 재일 상공인 경제 단체의 통일적 조직인 재일본조선인상공회연합본부(1952년 재일본조선인상공연합회로 명칭 변경)가 설립되었다.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최초의 재일한국인상공회는 1953년 5월에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의 산하단체로 오사카에서 설립된 ‘재일한국인상공회’(초대 회장 허갑조, 1961년 11월 오사카한국인상공회로 명칭 변경)이다. 4‧19 이후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서 1961년 5월 도쿄한국인상공회를 효시로 각지에서 잇달아 재일한국인상공회가 설립됨에 따라 1962년 2월에 9개 지역(오사카, 도쿄, 나고야, 교토, 야마구치, 후쿠오카, 히로시, 센다이, 아키타)의 재일한국인상공회의 통일 조직으로서 재일한국인상공회연합회(한상련, 회장 이강우)가 출범했다. 한상련은 1992년 재일한국상공회의소로 명칭을 변경하고 2011년 일본 정부로부터 ‘일반사단법인재일한국상공회의소’의 명칭 사용 허가를 취득했다. 2023년 현재 16개 지역 한국상공회의소에 개인‧법인 포함 약 1만 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있다.
재일한국인상공회의 활동으로서는 회원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기여가 중요한데, 시기별로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한일 국교가 성립되지 못한 1950년대에는 오사카한국인상공회가 한국 경제계와 재일한국인상공인과의 유일한 통로로 기능하면서 한국과의 무역 촉진 등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였으나 불안정한 한일 관계 때문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1960년대에 한일 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재일한국인상공회는 한국과의 무역 증진 및 재일한국인의 대한국 투자에 큰 기여를 했다. 당시 한국 경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재일한국인상공회는 한국 정재계 인사나 한국 시찰단과의 간담회 및 강연회 개최, 한국으로의 시찰단 파견 등을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한 정보를 파악, 축적하여 정보 센터로서 기능했다. 재일상공인의 한국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재일한국인상공회는 한국 투자를 둘러싼 분쟁 처리를 원활히 하고 투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1974년의 ‘본국투자협회’ 결성을 지원했으며, 교민은행의 설립을 추진하여 1981년 신한은행 설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1960~70년대의 외국인의 대한국 투자에서 재일한국인의 투자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음에 비추어 볼 때, 재일한국인상공회의 한국 경제 발전에 대한 공헌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에는 한국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외국과의 통로도 다양화됨에 따라 재일한국인상공회의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재일한국인상공회 내부적으로도 재일 1세에서 재일 2세로 세대 교체가 진행됨에 따라 본국 지향적 성격이 약화되고, 회원 간의 상호부조, 친목 및 지역 경제와의 관계 등을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